










책 사진: 작가 제공
이름 없는 존재들의 바스러지기 쉬운 모습을 유리눈동자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집.
숨을 거둔 비둘기의 빛을 잃은 눈이 실마리가 되어, 의지 없이 태어나 닳아가면서도 살아내는 자들의 흔적을 좇았다.
진 곳곳에 금별색을 더해, 유리처럼 텅 빈 눈빛의 잔광이 스며든다.
모두 펼치면 양면 포스터가 되는 싸개지 아래, 인간과 비둘기가 본표지 양면에 망점으로 새겨져 있다.
작가노트
지난 몇 년간 찍어온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이 사진들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 있는가. 여기저기서 모은 도시의 흔적들이 내 방에 말없이 누워있다. 나는 별개로 보이는 사진들을 하나로 엮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아주 옅게, 오래도록 지니고 다녔다. 밤거리에 떠도는 닭과 돼지의 냄새 속에 퍼지는 담배 연기처럼.
어느 날 집 근처를 걷다가 도로에서 눌려 죽은 비둘기를 발견했다. 고독사한 사람이 부패하고 나서야 발견된 것처럼 금파리 무리만이 숨을 거둔 비둘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메이저리그 투수 랜디 존슨이 던진 공에 비둘기가 바람에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산화한 사건이 떠올랐다. 또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성화대에 앉아 있던 흰 비둘기들이 타오르는 성화를 피하지 못하고 타버린 영상도 뇌리를 스쳤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좋은 명분을 가진 비둘기는 1988년 대통령 취임식 이후 대규모 행사 때마다 수천 마리씩 하늘로 날려 보내진 이후로 지금은 개체 수가 약 100만 마리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날아간 평화들은 끈질기게 살아내고 버티다가 이유 없이 맞아 죽고, 쉬고 있다가 타 죽고, 먹이에 몰두하다 밟혀 죽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낯익은 기운이 감돌아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거기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나, 사회로부터 이러저러한 상징을 부여받고 날려 보내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꿈을 꾸다 새어 나오는 쓴맛에 방향을 잃은 표정, 온 힘을 들여 무언가를 찾지만 끝까지 찾을 수 없는 손짓, 가려진 눈빛의 사람들이 이름 없는 비둘기들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번화가나 공원에서 비둘기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다가 비둘기들의 힘찬 날갯짓이 시작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면 도시에는 인간들만 살고 있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결국 도시는,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모른 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든 생명체의 거대한 사냥터였다.
서울에 산 지 9년이 넘었는데도 노들섬을 최근에야 처음 가 봤다. 서울에서 어디론가 갈 때면 KTX를 타고 항상 건너던 한강철교를 밖에서 바라보니 생경했다. ‘안에서 보는 모습이랑 밖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르네’하고 감탄했다. 한껏 무거워진 구름을 뒤편에 깔고 눅눅한 햇빛을 머금은 63빌딩을 바라보는데 제비가 총총거리며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서울에서 제비를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희미했다. 그래서 더욱 이리저리 움직이며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 속의 제비는 방금 씻고 나온 것처럼 너무 깨끗했다. 날갯짓은 그들이 머문 자리에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을 것처럼 산뜻했다. 이렇게는 사진에 잔상과 냄새가 배어들 틈이 없겠다 싶어서 제비 찍기는 그만두었다.
사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대학생 시절 잠시 몸담았던 영화학회 활동이 지금도 내 마음에서 멈추지 않고 떠오른다. 당시 학회를 이끌던 선배는 매주 모임 때마다 각자 찍어 온 사진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한 편의 내러티브로 엮어보라고 했다. 배치가 끝나면 각각 자신의 내러티브에 대해 말하고 다른 학회원들은 ‘나는 이렇게 배치하는 게 더 좋겠다’고 의견을 주기도 했다. 다들 관점은 달랐지만, 말이 되는 쪽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익숙한 대로 배치하는 건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선형적인 순서로 서사를 구성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사진의 서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오랜 고민의 결과를 엮어 내놓는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힘들여 얻은 사진들이 너무나 쉽게 찍힌 사진에 밀려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실패가 목적이 된 사람처럼 더욱 시간을 들였다. 헛된 줄 알았던 발걸음들이 결국 길 위에 흔적으로 남을 때까지, 나는 계속할 수 있어 기쁘다.
이청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로부터 상징을 부여받은 것들에 시선을 두고 있다.











책 사진: 작가 제공
이름 없는 존재들의 바스러지기 쉬운 모습을 유리눈동자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집.
숨을 거둔 비둘기의 빛을 잃은 눈이 실마리가 되어, 의지 없이 태어나 닳아가면서도 살아내는 자들의 흔적을 좇았다.
진 곳곳에 금별색을 더해, 유리처럼 텅 빈 눈빛의 잔광이 스며든다.
모두 펼치면 양면 포스터가 되는 싸개지 아래, 인간과 비둘기가 본표지 양면에 망점으로 새겨져 있다.
작가노트
지난 몇 년간 찍어온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이 사진들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 있는가. 여기저기서 모은 도시의 흔적들이 내 방에 말없이 누워있다. 나는 별개로 보이는 사진들을 하나로 엮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아주 옅게, 오래도록 지니고 다녔다. 밤거리에 떠도는 닭과 돼지의 냄새 속에 퍼지는 담배 연기처럼.
어느 날 집 근처를 걷다가 도로에서 눌려 죽은 비둘기를 발견했다. 고독사한 사람이 부패하고 나서야 발견된 것처럼 금파리 무리만이 숨을 거둔 비둘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메이저리그 투수 랜디 존슨이 던진 공에 비둘기가 바람에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산화한 사건이 떠올랐다. 또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성화대에 앉아 있던 흰 비둘기들이 타오르는 성화를 피하지 못하고 타버린 영상도 뇌리를 스쳤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좋은 명분을 가진 비둘기는 1988년 대통령 취임식 이후 대규모 행사 때마다 수천 마리씩 하늘로 날려 보내진 이후로 지금은 개체 수가 약 100만 마리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날아간 평화들은 끈질기게 살아내고 버티다가 이유 없이 맞아 죽고, 쉬고 있다가 타 죽고, 먹이에 몰두하다 밟혀 죽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낯익은 기운이 감돌아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거기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나, 사회로부터 이러저러한 상징을 부여받고 날려 보내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꿈을 꾸다 새어 나오는 쓴맛에 방향을 잃은 표정, 온 힘을 들여 무언가를 찾지만 끝까지 찾을 수 없는 손짓, 가려진 눈빛의 사람들이 이름 없는 비둘기들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번화가나 공원에서 비둘기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다가 비둘기들의 힘찬 날갯짓이 시작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면 도시에는 인간들만 살고 있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결국 도시는,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모른 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든 생명체의 거대한 사냥터였다.
서울에 산 지 9년이 넘었는데도 노들섬을 최근에야 처음 가 봤다. 서울에서 어디론가 갈 때면 KTX를 타고 항상 건너던 한강철교를 밖에서 바라보니 생경했다. ‘안에서 보는 모습이랑 밖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르네’하고 감탄했다. 한껏 무거워진 구름을 뒤편에 깔고 눅눅한 햇빛을 머금은 63빌딩을 바라보는데 제비가 총총거리며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서울에서 제비를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희미했다. 그래서 더욱 이리저리 움직이며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 속의 제비는 방금 씻고 나온 것처럼 너무 깨끗했다. 날갯짓은 그들이 머문 자리에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을 것처럼 산뜻했다. 이렇게는 사진에 잔상과 냄새가 배어들 틈이 없겠다 싶어서 제비 찍기는 그만두었다.
사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대학생 시절 잠시 몸담았던 영화학회 활동이 지금도 내 마음에서 멈추지 않고 떠오른다. 당시 학회를 이끌던 선배는 매주 모임 때마다 각자 찍어 온 사진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한 편의 내러티브로 엮어보라고 했다. 배치가 끝나면 각각 자신의 내러티브에 대해 말하고 다른 학회원들은 ‘나는 이렇게 배치하는 게 더 좋겠다’고 의견을 주기도 했다. 다들 관점은 달랐지만, 말이 되는 쪽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익숙한 대로 배치하는 건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선형적인 순서로 서사를 구성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사진의 서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오랜 고민의 결과를 엮어 내놓는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힘들여 얻은 사진들이 너무나 쉽게 찍힌 사진에 밀려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실패가 목적이 된 사람처럼 더욱 시간을 들였다. 헛된 줄 알았던 발걸음들이 결국 길 위에 흔적으로 남을 때까지, 나는 계속할 수 있어 기쁘다.
이청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로부터 상징을 부여받은 것들에 시선을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