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은 장면들, 놓쳤던 순간들.
보스토크 매거진 이번호의 키워드는 ‘순간들’, ‘장면들’입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카메라가 없었다면, 바라볼 겨를도 없이 더 자주 놓치고 말았을 ‘사진적인 순간들’, ‘사진적인 장면들’을 모으고 골랐습니다. 그리고 김혜순, 박연준, 김애란, 박준 등의 필자에게 ‘그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던 순간들’을 주제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시 붙잡고 싶은 어떤 장면들에 관해서.
명멸하는 순간과 장면, 너와 나를 이루는 최소 단위.
그런 순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1초 전도 아니고 1초 후도 아닌 바로 지금. 어떤 사물이 어느 존재가 제 빛깔 제 모습 제 목소리를 잠시 드러내는 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 때로 사진가들은 그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심호흡을 합니다. 그건 단순히 순간포착을 위한 기술이기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긴장시키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집요하고 예민하게 벼린 눈동자로 바라본 순간은 평소 바라봤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카메라로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같은 모습이, 또 하나 하나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이 렌즈의 앞과 뒤에서 서로를 향해 반짝이기 때문입니다. 이번호에 유독 빛나고 반짝이는 사진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잡지를 펼치고 우리를 처음 맞이하는 사진들 역시 작고 놓치기 쉬운 반짝임이 살뜰하게 담겨있습니다. 클레이튼 코터렐, 브리짓 콜린스, 에리크 모빙켈, 세 명의 사진가는 자신 주변의 환경과 사물에 미시적인 시각으로 섬세하게 접근한 작업을 보여줍니다. 그다음으로 니나안, 박현성, 최요한의 사진 작업이 이어집니다. 눈앞의 세상과 자신만의 시각이 조응된 그들의 사진에서 청량한 빛과 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여덟 편의 에세이가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운영자 이로, 사진비평가 김현호, 에세이 작가 이다울, 소설가 황유미와 김애란, 시인 김혜순과 박연준 그리고 박준. 여덟 명의 필자에게는 ‘사진을 포함해 그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던 어떤 순간들’에 관해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의 에세이에는 자신을 사로잡은 장면들, 계속 두고두고 떠올리는 어떤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여덟 개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어떤 장면과 순간에 상처받고 좌절하고 체념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과 순간을 기록하고, 상상하고,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눈과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사진들이 빼곡하게 지면에 채워집니다. 에바 페르만덜, 히로유키 다케노우치, 토니에 틸레센, 에를리 그륀츠바일, 하트 레스키나, 아담 와이트, 레티치아 르 퓌, 모두 일곱 명으로 채워진 화보면에서 각자의 독특한 시각과 사유로 빚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모두 분명히 현실 속의 존재하는 장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실을 초과한 빛과 색의 다발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서 살짝 어긋나 있는 이미지에는 바라보는 과정에서 눈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긋남과 눈의 의지가 우리가 속한 장면을,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을 (비록 사라질지라도) ‘다시 또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VOSTOK〉 2021년 3-4월호 / VOL. 26
특집 | 순간들, 장면들
001 Micro Level _ Clayton Cotterell
010 Permanence and Ephemera _ Bridget Collins
020 Slør _ Erik Mowinckel
032 브리드 인, 브리드 아웃 _ 니나안
044 예스터데이즈 _ 박현성
054 논리니어 / 피쉬 스케일스 _ 최요한
065 목록의 합계를 스크롤해서 _ 이로
071 낯선 슬픔을 옮기는 일 _ 황유미
077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_ 이다울
083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_ 김현호
090 Snowdome _ Garrett Grove
105 저녁과 밤 _ 박준
111 진짜로 가짜 같은 진짜 _ 김애란
117 깨끗한 성공, 깨끗한 실패 _ 박연준
123 빛 속에서 빗속을 찾아 _ 김혜순
129 The Trespasser _ Eva Vermandel
140 Distance and Depth / The Fourth Wall _ Hiroyuki Takenouchi
152 One Another _ Tonje Thilesen
164 Gedichte und Gerichte _ Erli Grünzweil
178 Beyond the Clouds _ Hart Lëshkina
190 Lucid _ Adam Whyte
202 Mythologies _ Letizia Le Fur
224 [스톱-모션] 나가며-들어가며 _ 유운성
230 [docking! 2020] 블루 드레스 _ 김재은
240 [사진-픽션] 언어의 감옥 _ 장혜령
256 [에디터스 레터] 철 지난 메모 _ 박지수
붙잡은 장면들, 놓쳤던 순간들.
보스토크 매거진 이번호의 키워드는 ‘순간들’, ‘장면들’입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카메라가 없었다면, 바라볼 겨를도 없이 더 자주 놓치고 말았을 ‘사진적인 순간들’, ‘사진적인 장면들’을 모으고 골랐습니다. 그리고 김혜순, 박연준, 김애란, 박준 등의 필자에게 ‘그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던 순간들’을 주제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시 붙잡고 싶은 어떤 장면들에 관해서.
명멸하는 순간과 장면, 너와 나를 이루는 최소 단위.
그런 순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1초 전도 아니고 1초 후도 아닌 바로 지금. 어떤 사물이 어느 존재가 제 빛깔 제 모습 제 목소리를 잠시 드러내는 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 때로 사진가들은 그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심호흡을 합니다. 그건 단순히 순간포착을 위한 기술이기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긴장시키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집요하고 예민하게 벼린 눈동자로 바라본 순간은 평소 바라봤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카메라로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같은 모습이, 또 하나 하나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이 렌즈의 앞과 뒤에서 서로를 향해 반짝이기 때문입니다. 이번호에 유독 빛나고 반짝이는 사진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잡지를 펼치고 우리를 처음 맞이하는 사진들 역시 작고 놓치기 쉬운 반짝임이 살뜰하게 담겨있습니다. 클레이튼 코터렐, 브리짓 콜린스, 에리크 모빙켈, 세 명의 사진가는 자신 주변의 환경과 사물에 미시적인 시각으로 섬세하게 접근한 작업을 보여줍니다. 그다음으로 니나안, 박현성, 최요한의 사진 작업이 이어집니다. 눈앞의 세상과 자신만의 시각이 조응된 그들의 사진에서 청량한 빛과 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여덟 편의 에세이가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운영자 이로, 사진비평가 김현호, 에세이 작가 이다울, 소설가 황유미와 김애란, 시인 김혜순과 박연준 그리고 박준. 여덟 명의 필자에게는 ‘사진을 포함해 그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던 어떤 순간들’에 관해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의 에세이에는 자신을 사로잡은 장면들, 계속 두고두고 떠올리는 어떤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여덟 개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어떤 장면과 순간에 상처받고 좌절하고 체념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과 순간을 기록하고, 상상하고,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눈과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사진들이 빼곡하게 지면에 채워집니다. 에바 페르만덜, 히로유키 다케노우치, 토니에 틸레센, 에를리 그륀츠바일, 하트 레스키나, 아담 와이트, 레티치아 르 퓌, 모두 일곱 명으로 채워진 화보면에서 각자의 독특한 시각과 사유로 빚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모두 분명히 현실 속의 존재하는 장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실을 초과한 빛과 색의 다발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서 살짝 어긋나 있는 이미지에는 바라보는 과정에서 눈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긋남과 눈의 의지가 우리가 속한 장면을,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을 (비록 사라질지라도) ‘다시 또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VOSTOK〉 2021년 3-4월호 / VOL. 26
특집 | 순간들, 장면들
001 Micro Level _ Clayton Cotterell
010 Permanence and Ephemera _ Bridget Collins
020 Slør _ Erik Mowinckel
032 브리드 인, 브리드 아웃 _ 니나안
044 예스터데이즈 _ 박현성
054 논리니어 / 피쉬 스케일스 _ 최요한
065 목록의 합계를 스크롤해서 _ 이로
071 낯선 슬픔을 옮기는 일 _ 황유미
077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_ 이다울
083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_ 김현호
090 Snowdome _ Garrett Grove
105 저녁과 밤 _ 박준
111 진짜로 가짜 같은 진짜 _ 김애란
117 깨끗한 성공, 깨끗한 실패 _ 박연준
123 빛 속에서 빗속을 찾아 _ 김혜순
129 The Trespasser _ Eva Vermandel
140 Distance and Depth / The Fourth Wall _ Hiroyuki Takenouchi
152 One Another _ Tonje Thilesen
164 Gedichte und Gerichte _ Erli Grünzweil
178 Beyond the Clouds _ Hart Lëshkina
190 Lucid _ Adam Whyte
202 Mythologies _ Letizia Le Fur
224 [스톱-모션] 나가며-들어가며 _ 유운성
230 [docking! 2020] 블루 드레스 _ 김재은
240 [사진-픽션] 언어의 감옥 _ 장혜령
256 [에디터스 레터] 철 지난 메모 _ 박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