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사진이라는 매체는 이제 특정한 하나의 순간이나 장소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문화 활동 분야에서 매일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 내 주변에 사진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다. 이러한 환경이 우리가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방식과 나 자신을 보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문화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왜 이처럼 성공적인 발명이 되었는가?
『사진의 주요 개념』은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인 제도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사진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그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는 안내서이다. 여기서 사진은 초상, 풍경, 정물, 광고, 다큐멘터리와 같은 핵심 ‘장르’들로 나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진 현장과 동시대의 이론적 쟁점 속에서 함께 논의된다.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사진
이 책은 2009년 영국에서 초판 출간된 후 여러 국가에서 번역되어 다양한 수준의 사진 수업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사진의 역사와 장르, 주요 개념뿐 아니라 그 제작 관례와 사회적 수용 과정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폭넓은 독자들에게 열려 있다. 2016년 출간된 개정판에는 사진을 둘러싼 시대적 변화와 그에 따른 논의들이 반영되었다. 이젠 ‘포스트-포토그래피(post-photography)’ 시대라 해야 할 만큼 지난 십여 년간 사진은 컴퓨터 기술의 혁명이나 광범위한 인터넷 사용 문화와 같은 큰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면 한때 뉴스, 광고, 정치와 같이 명확히 구분되었던 사진 담론의 분야들이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서로 구별할 수 없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리고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고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이전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사소하게 여겨졌던 유형의 이미지들이 개인적 용도를 넘어 사회적 가시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진 이미지 자체가 디지털 기반에 의해 얼마나 새로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다. 저자 데이비드 베이트(David Bate)는 사진의 급격한 변화가 사진 이미지의 특정한 형태가 아니라 그 유통과 보급 방식에서 일어났음을 지적하며, 기존의 사회 제도와 인터넷이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오래된 방식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진의 새로운 현현 방식을 어떻게 논할 것인가에 있다.
사진 이론의 필요성
어떤 문제를 기존의 사유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론이다. 역사적으로 사진 이론이 발생했던 핵심 시기는 셋으로 구분된다. 사진이 발명된 1830년대 말, 대중 매체가 출현한 이십세기 초, 사회와 문화 전반의 흐름과 함께 사진에서도 비판적 전환이 일어난 1960–1970년대가 그것이다. 이렇듯 사진 이론은 중요한 사회적 목적을 가지면서 구조주의, 인권 운동, 여성 운동 등과 같은 움직임들과 동시에 출현했다. 각 시기마다 존재한 사진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아직 이 이론들의 그림자 아래 있다면, 이 이론들을 밝은 낮의 세상으로 가져오는 것”이 최선의 평가 방법이라고 본다.
이 책은 특정한 장르에 따라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수사학에서부터 시점, 외연, 내포, 아방가르드, 개인 사진, 동물, 르포르타주, 소품, 장소, 상업 사진, 클로즈업, 개념미술, 오락, 장치 이론, 다의성 등 세밀한 범주로 다시 갈라진다. 그중 1장 「사진 이론」은 십구세기에서 이십세기에 이르는 간략한 사진의 역사를 다루면서 특히 기호학을 중심으로 사진 이론 및 쟁점의 변천을 개괄한다. 저자는 대중 매체의 출현과 함께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에 매달렸던 십구세기 사진 논쟁을 무효화한 인물로 발터 벤야민을 꼽는다. 그는 사회적인 것을 중요하게 다룬 사진 작업들을 선호했는데, 사진 작업은 외형을 통해 신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형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전통적 예술 개념을 뒤집는 방식으로써의 사진에 주목한 롤랑 바르트와 빅터 버긴 등에 의해 사진의 비판적 전환이 일어났으며, 1980년대 말에는 사진이 현대미술의 지배적인 형식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독자들은 사진적 재현이 단순한 미적 재현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사진의 의미가 우연적이고 맥락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변화하는 화법으로서의 장르
장별 구성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사진에 대한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은 ‘장르’이다. 이는 아직까지 신선한 접근법으로 삼을 만하다. 장르는 결코 소유되거나 고정되지 않으며, 진화하여 발전하거나 혼종적 형태로 바뀐다. 예를 들어 회화의 경우 르네상스 초상화에서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풍경화는 이후 독립된 장르로 부상했고, 영화에서 코미디는 종종 공포와 결합된다. 또한 특정 유형의 의미를 구축하도록 보조하는데, 이에 따라 관람자는 그 유형의 사진에서 나올 의미와 경험을 기대하게 된다. 요컨대 장르의 이론적 중요성은 사진가, 관람자, 제도가 서로 기대와 의미를 공유하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장 「스냅 사진과 제도」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사진 유형이라 할 수 있는 스냅 사진의 유래와 디지털 시대에서 변화된 쟁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가족 단위였던 이십세기 아마추어 스냅 사진과 오늘날 개인의 일상생활을 주기적으로 찍는 스냅 사진의 문화적 차이를 살펴보고, 스냅 사진과 셀피(selfie)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 및 배포됨에 따라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는 개인의 욕구를 표명하는 관행이 자리잡았음을 설명한다. 또한 이미지 생산이 부모 자식 간의 수직적 위계에서 형제자매, 친구와 같은 수평적 관계로 확장된 현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진단한다.
제일차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 운동으로서 등장한 다큐멘터리는 3장 「다큐멘터리와 스토리텔링」에서 조명한다. 이와 함께 부상한 편집권 문제, 이후 사진가 스스로 ‘저자(auteur) 사진가’의 지위를 획득한 경위에 대해 풀어 나가며, 다큐멘터리 사진이 제시하는 민주적 시선,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삶의 가시화 방식 등에 관해 전개한다. 4장 「인물 사진 보기」는 묘사하는 기술로 우리의 정체성을 고정하는 인물 사진을 주제로 한다. 초상화를 대체하게 된 스튜디오 사진, 행정적 자료로 활용되는 머그샷이나 여권 사진 같은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얼굴, 포즈, 의상, 장소, 소품 등 의미를 코드화하는 요소들이 소개된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인물 사진을 한 사람을 속성으로 기록한 묘사라고 할 때 그것은 그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성 정체성에 관한 기호학적 사건이 작동하는 곳이다.
뒤따르는 5장부터 8장까지는 풍경, 정물, 예술 사진, 글로벌리즘의 주요 개념에 접근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진이 단순한 예술을 넘어 방대한 분야 속에서 응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동시대의 예술 사진 또한 아마추어, 패션, 군사적 용도 등 사진의 다른 측면을 이용하여 비판적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9장 「시각적 욕동」은 누구나 사진가가 되는 이 시대에 사진을 찍으려는/보려는 욕동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며, 복잡하게 얽힌 이 시선 간의 관계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맥락에서 따라간다. 또한 카메라의 장치 이론 측면에서 카메라의 위치와 관람자의 지각적 동일시가 일으키는 시각적 쾌에 관해 살펴본다.
사진이 역사에 기입되는 방식
기억은 사진의 많은 기능 중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사진의 발명은 사물, 사건, 사람과 그에 대한 경험을 포함하고 있는 기억의 방법을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집단적 사회적 기억의 모든 관계를 변화시켰다. 역사가 문서, 유물, 관련 자료를 통해 과거를 서술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사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10장 「역사와 사진」에서는 사진이 역사에 기입되는(혹은 기입될 수 있는) 방식에 관해 논한다. 사진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서술하는지는 역사가이기도 한 사진가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은 존 태그(John Tagg)로, 그는 사진의 역사를 담론의 역사 그리고 그것이 나타나는 제도적 공간에서 재고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은, 사진이 여러 용도에 걸쳐 문화에 기여하며 따라서 ‘이런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진 기표란 그것을 사용하는 의미 담론 내에서만 기의를 가진다는 기호학적 지점과 연결될 수 있다.
수십억 장의 사진이 끊임없이 생산 및 복제되는 오늘날, 사진에 관한 모든 역사적 작업의 문제는 이 방대한 양의 사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있다. 저자는 개인적 기억이라는 개념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 역사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목적이 과거를 ‘보기’ 위함이라면, 사진은 항상 매개된 관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진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잠재적으로 다의적인 해석이다.
저자 데이비드 베이트는 이론가이자 실제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이 점이 이론과 동시대 쟁점을 연결하는 현장성있는 서술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논의가 중심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진 이론서들과 달리, 저자는 역사 속에서 사진이 어떤 변화를 겪으며 수용되었는지 그 배경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한국어판 공동번역자들 역시 모두 사진 이론과 현장에서 활동하며 조금씩 다른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이론이나 실기 한 분야에 치중되었을 때 범할 수 있는, 사진 고유의 문맥을 벗어난 해석이나 오류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어판에는 원서 개정판에 실린 도판 중 한국 독자에게 꼭 필요한 62점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여기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라사이, 신디 셔먼, 워커 에번스, 아우구스트 잔더 등 주요 사진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었다. 책 끝에는 ‘주요 참고문헌’을 수록했다. 이 책이 개론서가 지닌 단순한 유용성을 잃지 않으면서, 모노그래프와 사진집, 사진의 역사와 이론, 비평, 현재 진행 중인 연구 분야의 문헌들과 함께 그물망의 일부로서 기능하기를 바라는 의도이다.
저자 소개
데이비드 베이트(David Bate)는 1956년 출생으로, 영국의 시각 예술 이론가이자 사진가이다. 센트럴런던폴리테크닉에서 영화와 사진 예술을 전공하고, 리즈대학교에서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 사진 이론 저널인 『포토그래피스(Photographies)』의 공동 창립자이자 편집자이며, 현재 웨스트민스터대학교 교수로 있다. 2018년에는 사진 교육의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왕립사진협회(Royal Photographic Society) 교육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진: 바르트, 스티글리츠, 그리고 기억의 예술(Photography after Postmodernism: Barthes, Stieglitz, and the Art of Memory)』(2022), 『사진: 아트 에센셜(Photography: Art Essentials)』(2021), 『비판적 실천으로서의 사진: 타자에 관한 노트(Photography as Critical Practice: Notes on Otherness)』(2020) 등이 있다.
책 소개
사진이라는 매체는 이제 특정한 하나의 순간이나 장소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문화 활동 분야에서 매일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 내 주변에 사진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다. 이러한 환경이 우리가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방식과 나 자신을 보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문화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왜 이처럼 성공적인 발명이 되었는가?
『사진의 주요 개념』은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인 제도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사진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그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는 안내서이다. 여기서 사진은 초상, 풍경, 정물, 광고, 다큐멘터리와 같은 핵심 ‘장르’들로 나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진 현장과 동시대의 이론적 쟁점 속에서 함께 논의된다.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사진
이 책은 2009년 영국에서 초판 출간된 후 여러 국가에서 번역되어 다양한 수준의 사진 수업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사진의 역사와 장르, 주요 개념뿐 아니라 그 제작 관례와 사회적 수용 과정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폭넓은 독자들에게 열려 있다. 2016년 출간된 개정판에는 사진을 둘러싼 시대적 변화와 그에 따른 논의들이 반영되었다. 이젠 ‘포스트-포토그래피(post-photography)’ 시대라 해야 할 만큼 지난 십여 년간 사진은 컴퓨터 기술의 혁명이나 광범위한 인터넷 사용 문화와 같은 큰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면 한때 뉴스, 광고, 정치와 같이 명확히 구분되었던 사진 담론의 분야들이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서로 구별할 수 없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리고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고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이전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사소하게 여겨졌던 유형의 이미지들이 개인적 용도를 넘어 사회적 가시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진 이미지 자체가 디지털 기반에 의해 얼마나 새로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다. 저자 데이비드 베이트(David Bate)는 사진의 급격한 변화가 사진 이미지의 특정한 형태가 아니라 그 유통과 보급 방식에서 일어났음을 지적하며, 기존의 사회 제도와 인터넷이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오래된 방식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진의 새로운 현현 방식을 어떻게 논할 것인가에 있다.
사진 이론의 필요성
어떤 문제를 기존의 사유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론이다. 역사적으로 사진 이론이 발생했던 핵심 시기는 셋으로 구분된다. 사진이 발명된 1830년대 말, 대중 매체가 출현한 이십세기 초, 사회와 문화 전반의 흐름과 함께 사진에서도 비판적 전환이 일어난 1960–1970년대가 그것이다. 이렇듯 사진 이론은 중요한 사회적 목적을 가지면서 구조주의, 인권 운동, 여성 운동 등과 같은 움직임들과 동시에 출현했다. 각 시기마다 존재한 사진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아직 이 이론들의 그림자 아래 있다면, 이 이론들을 밝은 낮의 세상으로 가져오는 것”이 최선의 평가 방법이라고 본다.
이 책은 특정한 장르에 따라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수사학에서부터 시점, 외연, 내포, 아방가르드, 개인 사진, 동물, 르포르타주, 소품, 장소, 상업 사진, 클로즈업, 개념미술, 오락, 장치 이론, 다의성 등 세밀한 범주로 다시 갈라진다. 그중 1장 「사진 이론」은 십구세기에서 이십세기에 이르는 간략한 사진의 역사를 다루면서 특히 기호학을 중심으로 사진 이론 및 쟁점의 변천을 개괄한다. 저자는 대중 매체의 출현과 함께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에 매달렸던 십구세기 사진 논쟁을 무효화한 인물로 발터 벤야민을 꼽는다. 그는 사회적인 것을 중요하게 다룬 사진 작업들을 선호했는데, 사진 작업은 외형을 통해 신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형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전통적 예술 개념을 뒤집는 방식으로써의 사진에 주목한 롤랑 바르트와 빅터 버긴 등에 의해 사진의 비판적 전환이 일어났으며, 1980년대 말에는 사진이 현대미술의 지배적인 형식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독자들은 사진적 재현이 단순한 미적 재현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사진의 의미가 우연적이고 맥락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변화하는 화법으로서의 장르
장별 구성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사진에 대한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은 ‘장르’이다. 이는 아직까지 신선한 접근법으로 삼을 만하다. 장르는 결코 소유되거나 고정되지 않으며, 진화하여 발전하거나 혼종적 형태로 바뀐다. 예를 들어 회화의 경우 르네상스 초상화에서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풍경화는 이후 독립된 장르로 부상했고, 영화에서 코미디는 종종 공포와 결합된다. 또한 특정 유형의 의미를 구축하도록 보조하는데, 이에 따라 관람자는 그 유형의 사진에서 나올 의미와 경험을 기대하게 된다. 요컨대 장르의 이론적 중요성은 사진가, 관람자, 제도가 서로 기대와 의미를 공유하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장 「스냅 사진과 제도」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사진 유형이라 할 수 있는 스냅 사진의 유래와 디지털 시대에서 변화된 쟁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가족 단위였던 이십세기 아마추어 스냅 사진과 오늘날 개인의 일상생활을 주기적으로 찍는 스냅 사진의 문화적 차이를 살펴보고, 스냅 사진과 셀피(selfie)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 및 배포됨에 따라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는 개인의 욕구를 표명하는 관행이 자리잡았음을 설명한다. 또한 이미지 생산이 부모 자식 간의 수직적 위계에서 형제자매, 친구와 같은 수평적 관계로 확장된 현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진단한다.
제일차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 운동으로서 등장한 다큐멘터리는 3장 「다큐멘터리와 스토리텔링」에서 조명한다. 이와 함께 부상한 편집권 문제, 이후 사진가 스스로 ‘저자(auteur) 사진가’의 지위를 획득한 경위에 대해 풀어 나가며, 다큐멘터리 사진이 제시하는 민주적 시선,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삶의 가시화 방식 등에 관해 전개한다. 4장 「인물 사진 보기」는 묘사하는 기술로 우리의 정체성을 고정하는 인물 사진을 주제로 한다. 초상화를 대체하게 된 스튜디오 사진, 행정적 자료로 활용되는 머그샷이나 여권 사진 같은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얼굴, 포즈, 의상, 장소, 소품 등 의미를 코드화하는 요소들이 소개된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인물 사진을 한 사람을 속성으로 기록한 묘사라고 할 때 그것은 그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성 정체성에 관한 기호학적 사건이 작동하는 곳이다.
뒤따르는 5장부터 8장까지는 풍경, 정물, 예술 사진, 글로벌리즘의 주요 개념에 접근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진이 단순한 예술을 넘어 방대한 분야 속에서 응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동시대의 예술 사진 또한 아마추어, 패션, 군사적 용도 등 사진의 다른 측면을 이용하여 비판적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9장 「시각적 욕동」은 누구나 사진가가 되는 이 시대에 사진을 찍으려는/보려는 욕동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며, 복잡하게 얽힌 이 시선 간의 관계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맥락에서 따라간다. 또한 카메라의 장치 이론 측면에서 카메라의 위치와 관람자의 지각적 동일시가 일으키는 시각적 쾌에 관해 살펴본다.
사진이 역사에 기입되는 방식
기억은 사진의 많은 기능 중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사진의 발명은 사물, 사건, 사람과 그에 대한 경험을 포함하고 있는 기억의 방법을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집단적 사회적 기억의 모든 관계를 변화시켰다. 역사가 문서, 유물, 관련 자료를 통해 과거를 서술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사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10장 「역사와 사진」에서는 사진이 역사에 기입되는(혹은 기입될 수 있는) 방식에 관해 논한다. 사진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서술하는지는 역사가이기도 한 사진가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은 존 태그(John Tagg)로, 그는 사진의 역사를 담론의 역사 그리고 그것이 나타나는 제도적 공간에서 재고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은, 사진이 여러 용도에 걸쳐 문화에 기여하며 따라서 ‘이런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진 기표란 그것을 사용하는 의미 담론 내에서만 기의를 가진다는 기호학적 지점과 연결될 수 있다.
수십억 장의 사진이 끊임없이 생산 및 복제되는 오늘날, 사진에 관한 모든 역사적 작업의 문제는 이 방대한 양의 사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있다. 저자는 개인적 기억이라는 개념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 역사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목적이 과거를 ‘보기’ 위함이라면, 사진은 항상 매개된 관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진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잠재적으로 다의적인 해석이다.
저자 데이비드 베이트는 이론가이자 실제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이 점이 이론과 동시대 쟁점을 연결하는 현장성있는 서술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논의가 중심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진 이론서들과 달리, 저자는 역사 속에서 사진이 어떤 변화를 겪으며 수용되었는지 그 배경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한국어판 공동번역자들 역시 모두 사진 이론과 현장에서 활동하며 조금씩 다른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이론이나 실기 한 분야에 치중되었을 때 범할 수 있는, 사진 고유의 문맥을 벗어난 해석이나 오류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어판에는 원서 개정판에 실린 도판 중 한국 독자에게 꼭 필요한 62점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여기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라사이, 신디 셔먼, 워커 에번스, 아우구스트 잔더 등 주요 사진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었다. 책 끝에는 ‘주요 참고문헌’을 수록했다. 이 책이 개론서가 지닌 단순한 유용성을 잃지 않으면서, 모노그래프와 사진집, 사진의 역사와 이론, 비평, 현재 진행 중인 연구 분야의 문헌들과 함께 그물망의 일부로서 기능하기를 바라는 의도이다.
저자 소개
데이비드 베이트(David Bate)는 1956년 출생으로, 영국의 시각 예술 이론가이자 사진가이다. 센트럴런던폴리테크닉에서 영화와 사진 예술을 전공하고, 리즈대학교에서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 사진 이론 저널인 『포토그래피스(Photographies)』의 공동 창립자이자 편집자이며, 현재 웨스트민스터대학교 교수로 있다. 2018년에는 사진 교육의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왕립사진협회(Royal Photographic Society) 교육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진: 바르트, 스티글리츠, 그리고 기억의 예술(Photography after Postmodernism: Barthes, Stieglitz, and the Art of Memory)』(2022), 『사진: 아트 에센셜(Photography: Art Essentials)』(2021), 『비판적 실천으로서의 사진: 타자에 관한 노트(Photography as Critical Practice: Notes on Otherness)』(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