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낫온리북스 (장혜진)
책 소개
사진책은 사진을 어항에 가두지 않는다. 사진과 이미지들을 새로운 물에 살아있는 물고기들처럼 풀어놓는 것이 사진책의 이상일 것이다. 나의 북디자인에서 가장 애쓴 부분이 사진책이다. 사진책 하나 하나는 나에게 사건이었다. - 정병규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의 첫 저작물
『정병규 사진 책』은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디자인한 31종의 ‘사진책’을 엮은 기획물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출판 편집자이자 기획자로서 명성을 날렸던 정병규는 1983년 파리 에꼴 에스티엔느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러 떠난다. 귀국한 1984년, 서울에 ‘정병규디자인’이라는 출판편집디자인 사무실을 설립한 정병규는 국내에 ‘북디자인’이라는 개념과 장르가 정착하는데 힘썼다. 지금까지 5,000여종이 넘는 책을 디자인한 정병규는 명실공히 한국 북디자인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북디자인은 곧 한국 북디자인 역사의 이정표다. 훗날 한국 현대 북디자인 역사가 저술된다면, 정병규는 통과하거나 극복해야만 하는 인물이자 ‘현상’으로 우뚝 서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도 상징적 의미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대로 다룬 단행본이나 단독 저술서는 국내에서 아직 발행된 바가 없다.
1996년 국내 첫 북디자인 전시로서도 기록되는 《정병규북디자인 1977~1996》과 2006년 영월 책박물관에서 열린 두 번째 북디자인 개인전 《책의 바다로 간다: 정병규북디자인 1996~2006》과 연계되어 발행된 도록이 존재한다. 정병규는 이 두 전시 도록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병규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그의 디자인 생각이나 실천들을 도록이라는 형식에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더더군다나 두 권의 책들은 그의 북디자인을 지면에 나열한 포트폴리오에 가까왔던 관계로 그의 본격 저작물이라고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정병규가 여러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설파한 그의 독특한 디자인 생각들은 여러 문헌에 분산되어 있을 뿐,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병규의 말과 생각이 기록되어 있는 『정병규 사진 책』은 사진책이라는 매체를 경유하여. 들여다 보는 그의 디자인론이자 정병규의 첫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책 만들기에 대해 1980년대 이후 꾸준하게 생각을 해오고 있고 그것의 현실화로서 사진집과 사진책은 나의 가슴 뛰는 현장이었다. - 정병규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정병규가 디자인한 사진책 31종 수록
『정병규 사진 책』은 ‘사진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병규가 디자인한 ‘이미지 중심의 책’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엄선된 31종의 책에는 통상 ‘사진집’이라고 부르는 책 뿐만 아니라 전시도록 및 사진소설 등도 포함된다. 정병규는 이 책에서 사진책과 사진집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는 앞으로의 책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사진책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책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에 대한 정병규 식의 의미부여이자 그의 북디자이너의 역할론이 압축되어 있는 단축키이다.
한국 현대 북디자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병규의 북디자인에서 그가 디자인한 사진책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정병규에게 ‘사진책’은 그의 북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만큼 북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총체적 역량을 발휘하고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매체였다. 국내에서 직업으로서의 북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지 못했던 1980년대 초반, 그는 기획자이자 편집자로서의 경험과 타고난 조형 감각을 북디자인이라는 행위에 녹여 내고,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작가 및 전문가들과 협업함으로써 당시로선 보기 드문 ‘이미지 중심’의 출판물을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그것은 수동적인 디자이너가 아닌, 작가들과 콘텐츠를 조율하고 협상하는 능동적인 북디자이너 상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토탈디자인으로서의 디자이너의 역량을 드러내는 행위이자, 영상 시대의 개막과 함께 미래의 책을 향한 노선 개척이었다.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집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1984)부터 시작하여 『민현식』(2012)까지 31종에 이르는 사진책들은 그간 문학 및 이론 분야 단행본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던 정병규 북디자인 세계를 전혀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다. 정병규에게 사진책이라는 이름의 ‘이미지 중심의 책’ 만들기는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한 디자이너의 사명감이자 문제의식의 총체였다.
나는 다행히 훌륭한 사진가들을 일찍 만나서 사진에 대해 그리고 인간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사진가를 들고 싶다. 강운구, 김수남, 구본창인데 그들을 만난 거다. - 정병규
국내 사진계의 거장 김수남, 강운구, 구본창과의 협업 이야기
수록된 31종의 사진책에는 정병규의 ‘말’이 동원된다. 정병규의 입말을 최대한 살려 편집된 글들은 정병규의 활자화된 육성으로서 이 글을 통해 정병규는 각 책에 얽힌 에피소드와 사연들을 회고한다. 이중 주목할 것은 사진책 작업을 매개로 만나게 된 사진가 김수남, 강운구 그리고 구본창과의 관계이다. 정병규는 이 세 명의 사진가를 특별히 지목하며 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간 사진책들을 깊은 애정을 갖고서 설명한다. 작고한 김수남 작가의 ‘한국의 굿’ 시리즈(1984~1993), 『한국의 탈』 & 『한국의 탈춤』(1988), 『아시아의 하늘과 땅』(1995), 강운구 작가의 『경주남산』(1986), 『모든 앙금』(1998), 구본창 작가의 『생각의 바다』(1992) 등은 정병규가 사진가들과 밀도 있게 협업한 결과물로서 작가와 디자이너간의 상호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 국내 미술 출판 및 아트북 역사의 빛나는 사례들이다. 정병규는 책 제작을 둘러싼 시대적 정황을 배경에 놓고 작가들과 교류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각 책 사례를 통해 반추한다.
1980년대에 사진집이나 사진책을 만든다는 것은 활자의 아날로그 시대와 콜드타입 혁명 사이에서 우리의 시각디자인과 북디자인이 가야할 새로운 땅이었다. - 정병규
사진책으로 보는 한국 시각문화이자 시각디자인사
『정병규 사진 책』은 정병규 북디자인 세계를 조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근 40여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 책은 그 자체가 생생한 한국 시각디자인 역사이자, 한국 예술출판의 한 계보이다. 특히 각 책에 동원된 정병규의 말, 북디자이너 정재완의 해제 그리고 사진책들 사이로 삽입된 시대와 디자인에 대한 단상들은 이 책의 의미를 한 디자이너의 회고담을 넘어 한국 시각디자인사 및 시각문화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소개되는 각각의 사진책은 정병규 개인의 경험담에서 출발하지만, 또 하나의 책으로서의 『정병규 사진 책』은 이 경험담이 역사와 문화라는 실은 거시적인 공적 자장 안에서 이뤄졌음을 곳곳에서 증언한다. 특히, 산업화의 여파로 광고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이 주를 이루었던 1980년대 초반, 사진책은 당시로선 매우 예외적인 출간물이자 문화로서, 자발적인 문화생산자로서의 (북)디자이너 역할에 대한 인식 없이는 제작 불가능했던 매체였다.
『정병규 사진 책』은 새로운 역사 쓰기의 한 표본을 제시하며, 저명 디자이너의 ‘모노그래프’를 넘어 시대의 제약 조건과 협상하는 한 개인의 성취와 한계를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설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 납활자에서 사진식자 그리고 1990년대의 디지털 시대로 이행해 나가는 출판디자인의 과정을 선명하게 짚고 있다는 점에서 『정병규 사진 책』은 책을 중심축으로 보는 한국의 시각문화이자 ‘조금 낯설고도 독특한’ 디자인사이다. 『정병규 사진 책』이 하나의 소소한 아카이브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이유이다.
사진책 디자인의 핵심은, 사진가의 작품을 가지고 사진가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정병규
문화예술계 주요 전문가들의 다채롭고 풍성한 해석
정병규의 사적인 말들과 생각들이 담긴 이 책에는 현재 국내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사들이 사진과 글로서 참여했다. 국내 젊은 사진가로서 대상과 분위기의 유려하고도 따스한 표면을 포착하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정멜멜은 부분적으로 변색되거나 손때가 묻은 31종의 사진책들을 오늘의 감각으로 경쾌하게 재해석했다. 그밖에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추천사를 썼으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송수정, 포토넷의 대표 최재균, 사진비평가 김현호 및 시인 박상순이 각자 경험한 정병규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밑바탕으로 『정병규 사진 책』에 다채로운 목소리와 시선을 보탰다.
앞으로 사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미래지향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 앞으로 책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사진책일 것이다.- 정병규
추천사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정병규의 업적을 자세히 나열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하게 된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 필자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 중반에 나온 김수남의 ‘한국의 굿’ 시리즈, 소설가 조세희의 사진이 실린 『침묵의 뿌리』, 한영수의 『우리江山』,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같은 책들이 모두 정병규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필자가 정병규의 디자인을 통해 사진에 입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사진으로 향한 눈이었으며 창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정병규의 눈과 손을 통할 때 비로소 작품이 됐다.” - 이영준, 기계비평가
책 속으로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는 내가 사진과 이미지를 중심으로 작업한 최초의 사진책이다. 아울러 사진책 만들기의 기본이 거의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중략- 출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이창희 씨와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밤을 새가며 작업했다. 행사 몇 시간 전에 책이 겨우 도착했다. 조선호텔 로비에서 초조하게 책을 기다리던 기억이 새롭다. - 정병규,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에 관한 설명 중
김수남 사진가는 『연세춘추』, 나는 『고대신문』. 두 사람 모두 대학신문 출신이어서 남다른 친밀감이 있었다. 마포 어느 맥주집에서 술을 마시던 날의 얘기다. 그날 화제 중 하나가 사진 크로핑이었다. 책으로 들어가는 사진은 디자이너에 의해서 손을 봐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런데 김수남 사진가는 무슨 얘기냐며, 어떻게 감히 디자이너가 사진에 손을 대느냐고 흥분했다. 이후 우리는 몇 년 동안 그 문제를 놓고 가끔 논쟁했다. 당시엔 매체 사진도 거의 크로핑을 안 했다. 신문사 데스크에서는 한국의 “앵글 그대로 쓸 만한 사진이 아니라면 그런 사진은 찍지도 말라.”고 했던 때다. - 정병규, ‘한국의 굿' 시리즈에 관한 설명 중
1980년대 사진식자의 등장은 활자와 사진과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타이포그래피 역사상 혁명적인 전환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번 주조되면 결코 그 모양을 바꿀 수 없는 활자인 납활자 시대에 디자인을 시작한 나에게 사진식자의 등장은 그야말로 꿈같은 사건이었다. 전문 식자공만이 만질 수 있는 활자의 몸체와 얼굴을 사진 인화지에 평면화된 상태로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제서야 디자이너도 직접 본문을 조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 정병규, 『흐르는 섬』에 관한 설명 중
이미지 다루기는 사진집과 사진책의 전제 조건이다. 그동안 흔히 ‘사진집’이라 말했던 것을 ‘사진책’과 ‘사진집’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진집은 주로 작품 사진을 다루는 것이고 사진책은 작품 사진이 아닌, 사진을 다루는 책을, 즉 사진 작품집과 구분하기 위한 말이다.
- 정병규
사진가들이 사진 이외의 영역인 책과 그 짜임새라든가 의미에 대해서는 소홀하다고 생각했다. 사진가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사진은 사진가만의 몫은 아니다. 자기가 찍은 사진을 사진가 자신이 절대적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앙드레 지드André Gide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신의 몫이다. 책에 대한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있길 바랬는데,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의외로 딱딱했다. 사진집은 사진 작품이 살아가는 새로운 집이다. - 정병규
『경주남산』과 같은 이러한 촬영 여행은 이후 두 번 다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강운구 같은 사진가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에게 『경주남산』은 그런 사진책이다. 처음 시안을 만들었을 때 강운구는 그것을 보고서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디자인에 대해서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경주남산을 주제로 삼고 오랜 시간 한 컷 한 컷 촬영하면서 사진가도 어찌 책에 대한 구상이 없었겠는가? 이후 사진책 구성을 이해한 강운구 작가는 혼자 경주에 내려가서 용장계 사진을 찍어 왔다. 부처는 이미 없고 좌대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었다. “자, 여기 있어. 필요할 거야.”라고 말하며 거두절미하고 무뚝뚝하게 사진을 건네주었을 때, 그 가슴 찡하던 기억은 또 어쩔 것이냐. - 정병규, 『경주남산』에 관한 설명 중
1980년대는 한국에서 ‘신명’이나 ‘신바람’ 이런 게 구체적으로 우리 생활과 삶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다. 탈춤과 마당극이 되살아나고 민중미술이 생기고 전통문화가 새롭게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는 굿을 할 수 없도록 금했던 것에서부터 1970년대에 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탈춤 같은 민중놀이가 그런 것이었다. 이때 탈춤, 민속놀이, 무속 등을 찍기 시작한 김수남 작가가 있었다. 그 사진들을 책으로 묶는 것은 많이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에 사진책을 한 권 낸다는 것은 과장하자면, 작은 빌딩 하나 세우는 것처럼 대단한 일에 버금간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 정병규
1970~80년대 한국 사진은 소재주의에 빠져 있었다. 소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사진은 사진의 바탕인 다큐멘터리의 핵심에서 벗어나 갈등하다가 소재주의에 빠졌다. 이후 자기 표현으로의 변화가 일어났다. 한정식 선생의 이 사진들은 그 경계선에 있는 작품들이다. ‘나무’라는 대상을 통해서 ‘나무’의 소재성을 최소화하고, 나무 사진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을 살리는 것이 북디자이너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 정병규, 『나무』에 관한 설명 중
사진이 책 속에 놓이게 되면 사진들끼리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이 새롭게 형성된다. 이때 그 사진책만의 ‘시간’이 정말 중요해진다. ‘사진책의 시각적인 흐름을 만든다’는 것은 곧 사진집에 있는 사진들의 새로운 이야기성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시각적 플롯visual plot이라고 부른다. 사진은 그 자체는 코드가 없는 매체인데, 책이라는 구조물 속에 배치가 되면 반드시 코드와 메시지가 생긴다. 사진책 속에서 생기는 새로운 이들 코드와 메시지가 시각적 플롯을 만든다. 사진책 디자인은 디자이너로서 시각적 플롯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병규
나는 1980년대 중반 그의 사진을 많이 보았다. 1990년, 구본창 작가는 서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 제목이 ‘생각의 바다’였다. 홍대 앞 서교호텔 옆 어느 커피숍에서 전시 제목을 같이 지었다. 그리고 1992년, 구본창 작가의 첫 사진집 제목도 『생각의 바다』라고 지었다. 다시 보니 이 책에는 작가가 그 이후에 전개할 사진 작업의 싹이 모두 들어 있는 것 같다. 그의 새로운 시도와 창조가 쉼 없이 계속 시도되고 있지만 『생각의 바다』에는 구본창 작가 사진의 원형질이 숨 쉬고 있다. - 정병규, 『생각의 바다』에 관한 설명 중
『한국의 부채』의 디자인적 테마는 리듬이다. 책을 통하여 부채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도입한 콘셉트는 ‘바람’이었다. 원래 부채 슬라이드는 모두 같은 크기였고 사진에 배경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배경을 제거했다. 당시 그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고, 부채의 위치와 모양을 이리저리 비트는 등....... 애초 증명 사진 같은 이미지들을 힘, 리듬, 크기, 위치, 각도, 관계, 그래픽 요소, 여백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연출했다. 나는 『한국의 부채』를 나의 대표 사진책 중 하나로 꼽고 있다. - 정병규, 『한국의 부채』에 관한 설명 중
과거 선생은 ‘페뎀(PEDeM)’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기획(Planning), 편집(Editing), 디자인(Design), 마케팅(Marketing)의 영어 단어를 합친 조어인데, 책을 생산하기 위한 모든 단계를 유기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시각예술에서는 큐레이팅보다 큐레토리얼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단순한 전시 행위에 그치지 않고 지식 생산과 공유라는 미술 실천의 과정 자체에 주목하기 위한 개념으로 통용된다. 같은 맥락에서 선생은 반세기에 걸쳐 이미 책을 통한 지식 생산과 공유라는 광의의 ‘에디토리얼’을 실천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의 표현을 빌 리자면 ‘디자인은 동사’인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에게 책을 만든다는 것은 마감이 있는 단일한 행위가 아니라 지적 모험과 시각적 실험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놀이의 궁극이다. - 송수정, “사유와 상상의 확장을 위한 이미지의 질서” 중
정병규는 세 사람 모두의 사진책을 만들었다. 그에게 책은 하나의 세계이므로 책의 편집과 디자인은 실제 세계를 다루고 취사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가 책을 말할 때 사실 그는 정신과 물질의 세계를, 아니 그것을 넘어 세계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세 친구들은 함께 개개의 세계를 만드는 동반자이다. 나는 그가 그토록 훌륭한 사진가들을 벗으로 삼아 디자이너로서 깊이 행복했노라고 읊조리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언젠가는 그 친구들을 한데 다루는 글을 꼭 쓸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 최재균, “큰 나무들 아래서 놀다” 중
선생이 사진을 자르고 다시 배치할 때, 책을 구성하는 파라텍스트들과 이미지의 균형을 탐색할 때, 사진을 찍었던 당시에는 그저 가능성에 불과했던 숱한 의미가 마치 만화경처럼 탄생한다. 그는 사진책을 만들 때 자신이 시각적 질서를 설정하는 일종의 권력자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거물 사진가라고 해도 책이라는 낯선 시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길잡이와 조언이 필요한 것이다. 선생은 사진책 편집에 대해서 유난히 겸손을 강조하곤 했는데, 이는 어쩌면 권력을 지닌 이의 아량이었을지도 모른다. - 김현호,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중
그런 까닭에 그의 폴리오는 21세기를 향해 묻는다. 북디자인은 무엇인가? 시각은 어떻게 함께 태어나는 힘을 생성하는가? 지금, 우리 시각 문화로서의 북디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 북디자인의 모더니티는 어떤 모습인가? 현대성의 내부에는 진정 무엇이 존재해야 하는가? 무엇을 물어야만 하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의 출발점에는 여전히 정병규 홀로 서 있을 뿐이다. - 박상순, “시각과 언어의 폴리오, 정병규의 역사적 의미” 중
차례
감사의 말 - 정병규 9
추천사 - 이영준 11
사진책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36
한국의 굿 48
한일교류이천년 60
흐르는 섬 66
침무의 뿌리 76
광복40년 86
우리江山 94
한국인의 놀이와 제의 102
경주남산 12
경주남산 흑백판 132
누드 140
사진 고대학생운동사 1905~1985 150
밝은 방 158
한국의 탈 & 한국의 탈춤 170
환희와 우정: 미소 스포츠 사진전 184
나무 190
한국, 그 내면과 외면 198
생각의 바다 208
백남준 220
CHONG JAE-KYOO 28
신체 또는 성 238
한국의 부채 244
아시아의 하늘과 땅 250
KOREAN HERITAGE SERIES 266
모든 앙금 274
종이로 보는 생활풍경 284
짧은 연대기 292
한국의 굿 - 만신들 1978~1997 198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 306
젊은 건축가상 2008 316
민현식 326
주석 335
에세이
송수정: 사유와 상상의 확장을 위한 이미지의 질서 408
최재균: 큰 나무들 아래서 놀다 412
김현호: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421
박상순: 시각과 언어의 폴리오, 정병규의 역사적 의미 429
부록
강의록: 이미지 다루기의 19가지 법칙 456
사진책 만들기에 관하여 478
인터뷰: 사진, 책으로 보다 482
고유명사 484
편집 후기 493
정병규 약력 504
저자 소개
정병규는 1946년 대구 출생으로 출판인이자 북디자이너이다. 경북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대신문』 편집국장 (1974~1975)을 지냈으며 1975년 『월간 소설문예』 편집부장으로 출판계에 입문해서 이후 민음사 편집부장 (1976~1977)을 지냈다. 1977년에는 홍성사를 설립해서 ‘홍성정예작가신서’와 ‘홍성신서’ 등을 기획했으며 당시 홍성인쇄 대표와 홍성기획 이사도 맡았다.
정병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출판과 편집 일을 두루 경험하며 광고디자인 위주였던 한국 디자인 분야에서 북디자인의 생산력을 입증하며 직업인으로서의 북디자이너가 되었다. 제13회 동경 유네스코 편집자 트레이닝코스를 수료 (1979)한 후에는 북디자인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며 이를 독립적인 디자인 영역으로 개척해 나갔다. 프랑스 파리의 에꼴 에스띠엔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 (1982~1983)하고 돌아온 후, 1984년에 ‘정병규디자인’을 설립해서 지금까지 출판디자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병규는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민음사의 북디자인을 아트디렉팅했으며 이 외에도 많은 출판사의 책을 기획·편집•디자인했다. 2009년부터 『중앙일보』 아트디렉터 (2009~2012)로서 신문지면의 디자인 혁신을 이끌기도 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편집위원 (1984), 서울아시안게임 전문위원 (1986), 서울올림픽 전문위원 (1988), 파주출판도시 ‘동아시아 책의 길’ 집행위원장 (2005~2014),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회장 (2008~2009),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 (2008~2009), ‘중국의 아름다운 책’ 심사위원 (2010~2017),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조직위원장 (2019)을 역임했다.
1984년부터 2015년까지 명지전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경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고려대학교 등에서 강의했고,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편집자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출판디자인 강의를 했다.
제1회 독서대상 편집상 (1979), 한국출판학회상 (1983), 제1회 교보북디자인 대상 (1989), 한국아트디렉터즈클럽 금상/은상 (1996), 한국출판인회의 특별공로상 (2006), 한국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 (2010),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디자인부문 (2013)을 수상했다.
저서로 『정병규북디자인 1977~1996』(생각의바다, 1996), 『책의 바다로 간다 정병규북디자인 1996~2006』 (영월책박물관, 2006)이 있다. 주요 전시로 《정병규북디자인 20년전》 (1996, 지현갤러리 & 동덕갤러리, 서울), 《정병규 북디자인전 ‘책의 바다로 간다’》 (2006, 영월책박물관), 《테이프 그라피 한글》 (2014, 지지향갤러리, 파주), 《책의 바다로 간다》 (2017, 완주책박물관), 《러키 세븐》 (2017, 사각형갤러리, 서울) 등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현대 한국 북디자인전》 (1998, 다케오, 도쿄), 《한글전》 (2001, 오사카 DDD갤러리 & 도쿄 GGG갤러리), 《훈민정음·난중일기 展: 다시, 바라보다》 (2018, DDP, 서울) 등 주요 디자인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ㄱ의 순간》 (2020, 예술의전당, 서울) 등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2011년 ‘정병규 학교’를 개교했고, 2016년 자주출판 ‘정병규에디션’을 시작했다. 현재 정병규디자인 대표, 정병규학교 대표이며 훈민정음과 한글문자학에 관한 강연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 소개
정멜멜. 책 사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활동한다. 동료들과 함께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를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브랜드와 매체, 작가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사진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공간 자체보다는 공간을 이루고 있는 인물과 사물, 그 자리에 감돌고 있는 분위기나 여백을 포착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클라이언트 잡이 아닌 경우엔 대부분 자연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때로는 무의미한 것들을 담는다.
송수정. 에세이
출판부터 전시 기획까지 이미지와 관련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네덜란드 세계보도사진상 심사위원, 세네갈 다카 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으로 활동했고, 월간 『지오GEO』 편집장, 서울루나포토 공동 대표 등을 거쳐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으로 있다.
최재균. 에세이
포토넷+포노+걷는책 대표.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잡지 월간 『포토넷』의 기자·편집장·발행인으로 일했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했다. 현재 포토넷 + 포노 + 걷는책 브랜드로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현호. 에세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계원예술대학 H-CENTER 연구원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편집장을 거쳐 〈사진이론학교〉와 격월간 『말과활』의 기획위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보스토크』 매거진의 편집 동인이자 대표로 있다. 사진 이미지가 생성되어 사회적으로 유통되고 소멸되는 생애 주기의 패턴을 추적하고, 그 의미와 양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다. 여러 매체에 사진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거짓말 상회』(2018, 공저) 등이 있다.
박상순. 에세이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출판사 민음사에 아트 디렉터로 입사해 편집주간, 대표이사(편집인)를 지냈고 펭귄클래식 코리아 대표 편집인을 역임했다. 1991년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1993),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1996), 『러브 아다지오』(2004), 『슬픈 감자 200그램』(2017), 『밤이, 밤이, 밤이』(2018)를 출간했고 이상(李箱)의 시를 해석한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2019)를 출간했다. ‘현대시동인상’, ‘현대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재완. 해제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후, 정병규디자인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민음사출판그룹에서 북디자이너로 일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월의눈에서 사진책을 디자인한다.
사진 | 낫온리북스 (장혜진)
책 소개
사진책은 사진을 어항에 가두지 않는다. 사진과 이미지들을 새로운 물에 살아있는 물고기들처럼 풀어놓는 것이 사진책의 이상일 것이다. 나의 북디자인에서 가장 애쓴 부분이 사진책이다. 사진책 하나 하나는 나에게 사건이었다. - 정병규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의 첫 저작물
『정병규 사진 책』은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디자인한 31종의 ‘사진책’을 엮은 기획물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출판 편집자이자 기획자로서 명성을 날렸던 정병규는 1983년 파리 에꼴 에스티엔느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러 떠난다. 귀국한 1984년, 서울에 ‘정병규디자인’이라는 출판편집디자인 사무실을 설립한 정병규는 국내에 ‘북디자인’이라는 개념과 장르가 정착하는데 힘썼다. 지금까지 5,000여종이 넘는 책을 디자인한 정병규는 명실공히 한국 북디자인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북디자인은 곧 한국 북디자인 역사의 이정표다. 훗날 한국 현대 북디자인 역사가 저술된다면, 정병규는 통과하거나 극복해야만 하는 인물이자 ‘현상’으로 우뚝 서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도 상징적 의미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대로 다룬 단행본이나 단독 저술서는 국내에서 아직 발행된 바가 없다.
1996년 국내 첫 북디자인 전시로서도 기록되는 《정병규북디자인 1977~1996》과 2006년 영월 책박물관에서 열린 두 번째 북디자인 개인전 《책의 바다로 간다: 정병규북디자인 1996~2006》과 연계되어 발행된 도록이 존재한다. 정병규는 이 두 전시 도록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병규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그의 디자인 생각이나 실천들을 도록이라는 형식에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더더군다나 두 권의 책들은 그의 북디자인을 지면에 나열한 포트폴리오에 가까왔던 관계로 그의 본격 저작물이라고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정병규가 여러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설파한 그의 독특한 디자인 생각들은 여러 문헌에 분산되어 있을 뿐,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병규의 말과 생각이 기록되어 있는 『정병규 사진 책』은 사진책이라는 매체를 경유하여. 들여다 보는 그의 디자인론이자 정병규의 첫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책 만들기에 대해 1980년대 이후 꾸준하게 생각을 해오고 있고 그것의 현실화로서 사진집과 사진책은 나의 가슴 뛰는 현장이었다. - 정병규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정병규가 디자인한 사진책 31종 수록
『정병규 사진 책』은 ‘사진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병규가 디자인한 ‘이미지 중심의 책’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엄선된 31종의 책에는 통상 ‘사진집’이라고 부르는 책 뿐만 아니라 전시도록 및 사진소설 등도 포함된다. 정병규는 이 책에서 사진책과 사진집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는 앞으로의 책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사진책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책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에 대한 정병규 식의 의미부여이자 그의 북디자이너의 역할론이 압축되어 있는 단축키이다.
한국 현대 북디자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병규의 북디자인에서 그가 디자인한 사진책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정병규에게 ‘사진책’은 그의 북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만큼 북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총체적 역량을 발휘하고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매체였다. 국내에서 직업으로서의 북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지 못했던 1980년대 초반, 그는 기획자이자 편집자로서의 경험과 타고난 조형 감각을 북디자인이라는 행위에 녹여 내고,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작가 및 전문가들과 협업함으로써 당시로선 보기 드문 ‘이미지 중심’의 출판물을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그것은 수동적인 디자이너가 아닌, 작가들과 콘텐츠를 조율하고 협상하는 능동적인 북디자이너 상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토탈디자인으로서의 디자이너의 역량을 드러내는 행위이자, 영상 시대의 개막과 함께 미래의 책을 향한 노선 개척이었다.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집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1984)부터 시작하여 『민현식』(2012)까지 31종에 이르는 사진책들은 그간 문학 및 이론 분야 단행본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던 정병규 북디자인 세계를 전혀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다. 정병규에게 사진책이라는 이름의 ‘이미지 중심의 책’ 만들기는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한 디자이너의 사명감이자 문제의식의 총체였다.
나는 다행히 훌륭한 사진가들을 일찍 만나서 사진에 대해 그리고 인간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사진가를 들고 싶다. 강운구, 김수남, 구본창인데 그들을 만난 거다. - 정병규
국내 사진계의 거장 김수남, 강운구, 구본창과의 협업 이야기
수록된 31종의 사진책에는 정병규의 ‘말’이 동원된다. 정병규의 입말을 최대한 살려 편집된 글들은 정병규의 활자화된 육성으로서 이 글을 통해 정병규는 각 책에 얽힌 에피소드와 사연들을 회고한다. 이중 주목할 것은 사진책 작업을 매개로 만나게 된 사진가 김수남, 강운구 그리고 구본창과의 관계이다. 정병규는 이 세 명의 사진가를 특별히 지목하며 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간 사진책들을 깊은 애정을 갖고서 설명한다. 작고한 김수남 작가의 ‘한국의 굿’ 시리즈(1984~1993), 『한국의 탈』 & 『한국의 탈춤』(1988), 『아시아의 하늘과 땅』(1995), 강운구 작가의 『경주남산』(1986), 『모든 앙금』(1998), 구본창 작가의 『생각의 바다』(1992) 등은 정병규가 사진가들과 밀도 있게 협업한 결과물로서 작가와 디자이너간의 상호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 국내 미술 출판 및 아트북 역사의 빛나는 사례들이다. 정병규는 책 제작을 둘러싼 시대적 정황을 배경에 놓고 작가들과 교류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각 책 사례를 통해 반추한다.
1980년대에 사진집이나 사진책을 만든다는 것은 활자의 아날로그 시대와 콜드타입 혁명 사이에서 우리의 시각디자인과 북디자인이 가야할 새로운 땅이었다. - 정병규
사진책으로 보는 한국 시각문화이자 시각디자인사
『정병규 사진 책』은 정병규 북디자인 세계를 조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근 40여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 책은 그 자체가 생생한 한국 시각디자인 역사이자, 한국 예술출판의 한 계보이다. 특히 각 책에 동원된 정병규의 말, 북디자이너 정재완의 해제 그리고 사진책들 사이로 삽입된 시대와 디자인에 대한 단상들은 이 책의 의미를 한 디자이너의 회고담을 넘어 한국 시각디자인사 및 시각문화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소개되는 각각의 사진책은 정병규 개인의 경험담에서 출발하지만, 또 하나의 책으로서의 『정병규 사진 책』은 이 경험담이 역사와 문화라는 실은 거시적인 공적 자장 안에서 이뤄졌음을 곳곳에서 증언한다. 특히, 산업화의 여파로 광고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이 주를 이루었던 1980년대 초반, 사진책은 당시로선 매우 예외적인 출간물이자 문화로서, 자발적인 문화생산자로서의 (북)디자이너 역할에 대한 인식 없이는 제작 불가능했던 매체였다.
『정병규 사진 책』은 새로운 역사 쓰기의 한 표본을 제시하며, 저명 디자이너의 ‘모노그래프’를 넘어 시대의 제약 조건과 협상하는 한 개인의 성취와 한계를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설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 납활자에서 사진식자 그리고 1990년대의 디지털 시대로 이행해 나가는 출판디자인의 과정을 선명하게 짚고 있다는 점에서 『정병규 사진 책』은 책을 중심축으로 보는 한국의 시각문화이자 ‘조금 낯설고도 독특한’ 디자인사이다. 『정병규 사진 책』이 하나의 소소한 아카이브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이유이다.
사진책 디자인의 핵심은, 사진가의 작품을 가지고 사진가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정병규
문화예술계 주요 전문가들의 다채롭고 풍성한 해석
정병규의 사적인 말들과 생각들이 담긴 이 책에는 현재 국내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사들이 사진과 글로서 참여했다. 국내 젊은 사진가로서 대상과 분위기의 유려하고도 따스한 표면을 포착하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정멜멜은 부분적으로 변색되거나 손때가 묻은 31종의 사진책들을 오늘의 감각으로 경쾌하게 재해석했다. 그밖에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추천사를 썼으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송수정, 포토넷의 대표 최재균, 사진비평가 김현호 및 시인 박상순이 각자 경험한 정병규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밑바탕으로 『정병규 사진 책』에 다채로운 목소리와 시선을 보탰다.
앞으로 사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미래지향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 앞으로 책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사진책일 것이다.- 정병규
추천사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정병규의 업적을 자세히 나열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하게 된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 필자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 중반에 나온 김수남의 ‘한국의 굿’ 시리즈, 소설가 조세희의 사진이 실린 『침묵의 뿌리』, 한영수의 『우리江山』,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같은 책들이 모두 정병규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필자가 정병규의 디자인을 통해 사진에 입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사진으로 향한 눈이었으며 창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정병규의 눈과 손을 통할 때 비로소 작품이 됐다.” - 이영준, 기계비평가
책 속으로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는 내가 사진과 이미지를 중심으로 작업한 최초의 사진책이다. 아울러 사진책 만들기의 기본이 거의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중략- 출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이창희 씨와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밤을 새가며 작업했다. 행사 몇 시간 전에 책이 겨우 도착했다. 조선호텔 로비에서 초조하게 책을 기다리던 기억이 새롭다. - 정병규,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에 관한 설명 중
김수남 사진가는 『연세춘추』, 나는 『고대신문』. 두 사람 모두 대학신문 출신이어서 남다른 친밀감이 있었다. 마포 어느 맥주집에서 술을 마시던 날의 얘기다. 그날 화제 중 하나가 사진 크로핑이었다. 책으로 들어가는 사진은 디자이너에 의해서 손을 봐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런데 김수남 사진가는 무슨 얘기냐며, 어떻게 감히 디자이너가 사진에 손을 대느냐고 흥분했다. 이후 우리는 몇 년 동안 그 문제를 놓고 가끔 논쟁했다. 당시엔 매체 사진도 거의 크로핑을 안 했다. 신문사 데스크에서는 한국의 “앵글 그대로 쓸 만한 사진이 아니라면 그런 사진은 찍지도 말라.”고 했던 때다. - 정병규, ‘한국의 굿' 시리즈에 관한 설명 중
1980년대 사진식자의 등장은 활자와 사진과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타이포그래피 역사상 혁명적인 전환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번 주조되면 결코 그 모양을 바꿀 수 없는 활자인 납활자 시대에 디자인을 시작한 나에게 사진식자의 등장은 그야말로 꿈같은 사건이었다. 전문 식자공만이 만질 수 있는 활자의 몸체와 얼굴을 사진 인화지에 평면화된 상태로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제서야 디자이너도 직접 본문을 조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 정병규, 『흐르는 섬』에 관한 설명 중
이미지 다루기는 사진집과 사진책의 전제 조건이다. 그동안 흔히 ‘사진집’이라 말했던 것을 ‘사진책’과 ‘사진집’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진집은 주로 작품 사진을 다루는 것이고 사진책은 작품 사진이 아닌, 사진을 다루는 책을, 즉 사진 작품집과 구분하기 위한 말이다.
- 정병규
사진가들이 사진 이외의 영역인 책과 그 짜임새라든가 의미에 대해서는 소홀하다고 생각했다. 사진가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사진은 사진가만의 몫은 아니다. 자기가 찍은 사진을 사진가 자신이 절대적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앙드레 지드André Gide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신의 몫이다. 책에 대한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있길 바랬는데,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의외로 딱딱했다. 사진집은 사진 작품이 살아가는 새로운 집이다. - 정병규
『경주남산』과 같은 이러한 촬영 여행은 이후 두 번 다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강운구 같은 사진가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에게 『경주남산』은 그런 사진책이다. 처음 시안을 만들었을 때 강운구는 그것을 보고서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디자인에 대해서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경주남산을 주제로 삼고 오랜 시간 한 컷 한 컷 촬영하면서 사진가도 어찌 책에 대한 구상이 없었겠는가? 이후 사진책 구성을 이해한 강운구 작가는 혼자 경주에 내려가서 용장계 사진을 찍어 왔다. 부처는 이미 없고 좌대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었다. “자, 여기 있어. 필요할 거야.”라고 말하며 거두절미하고 무뚝뚝하게 사진을 건네주었을 때, 그 가슴 찡하던 기억은 또 어쩔 것이냐. - 정병규, 『경주남산』에 관한 설명 중
1980년대는 한국에서 ‘신명’이나 ‘신바람’ 이런 게 구체적으로 우리 생활과 삶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다. 탈춤과 마당극이 되살아나고 민중미술이 생기고 전통문화가 새롭게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는 굿을 할 수 없도록 금했던 것에서부터 1970년대에 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탈춤 같은 민중놀이가 그런 것이었다. 이때 탈춤, 민속놀이, 무속 등을 찍기 시작한 김수남 작가가 있었다. 그 사진들을 책으로 묶는 것은 많이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에 사진책을 한 권 낸다는 것은 과장하자면, 작은 빌딩 하나 세우는 것처럼 대단한 일에 버금간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 정병규
1970~80년대 한국 사진은 소재주의에 빠져 있었다. 소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사진은 사진의 바탕인 다큐멘터리의 핵심에서 벗어나 갈등하다가 소재주의에 빠졌다. 이후 자기 표현으로의 변화가 일어났다. 한정식 선생의 이 사진들은 그 경계선에 있는 작품들이다. ‘나무’라는 대상을 통해서 ‘나무’의 소재성을 최소화하고, 나무 사진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을 살리는 것이 북디자이너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 정병규, 『나무』에 관한 설명 중
사진이 책 속에 놓이게 되면 사진들끼리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이 새롭게 형성된다. 이때 그 사진책만의 ‘시간’이 정말 중요해진다. ‘사진책의 시각적인 흐름을 만든다’는 것은 곧 사진집에 있는 사진들의 새로운 이야기성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시각적 플롯visual plot이라고 부른다. 사진은 그 자체는 코드가 없는 매체인데, 책이라는 구조물 속에 배치가 되면 반드시 코드와 메시지가 생긴다. 사진책 속에서 생기는 새로운 이들 코드와 메시지가 시각적 플롯을 만든다. 사진책 디자인은 디자이너로서 시각적 플롯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병규
나는 1980년대 중반 그의 사진을 많이 보았다. 1990년, 구본창 작가는 서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 제목이 ‘생각의 바다’였다. 홍대 앞 서교호텔 옆 어느 커피숍에서 전시 제목을 같이 지었다. 그리고 1992년, 구본창 작가의 첫 사진집 제목도 『생각의 바다』라고 지었다. 다시 보니 이 책에는 작가가 그 이후에 전개할 사진 작업의 싹이 모두 들어 있는 것 같다. 그의 새로운 시도와 창조가 쉼 없이 계속 시도되고 있지만 『생각의 바다』에는 구본창 작가 사진의 원형질이 숨 쉬고 있다. - 정병규, 『생각의 바다』에 관한 설명 중
『한국의 부채』의 디자인적 테마는 리듬이다. 책을 통하여 부채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도입한 콘셉트는 ‘바람’이었다. 원래 부채 슬라이드는 모두 같은 크기였고 사진에 배경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배경을 제거했다. 당시 그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고, 부채의 위치와 모양을 이리저리 비트는 등....... 애초 증명 사진 같은 이미지들을 힘, 리듬, 크기, 위치, 각도, 관계, 그래픽 요소, 여백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연출했다. 나는 『한국의 부채』를 나의 대표 사진책 중 하나로 꼽고 있다. - 정병규, 『한국의 부채』에 관한 설명 중
과거 선생은 ‘페뎀(PEDeM)’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기획(Planning), 편집(Editing), 디자인(Design), 마케팅(Marketing)의 영어 단어를 합친 조어인데, 책을 생산하기 위한 모든 단계를 유기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시각예술에서는 큐레이팅보다 큐레토리얼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단순한 전시 행위에 그치지 않고 지식 생산과 공유라는 미술 실천의 과정 자체에 주목하기 위한 개념으로 통용된다. 같은 맥락에서 선생은 반세기에 걸쳐 이미 책을 통한 지식 생산과 공유라는 광의의 ‘에디토리얼’을 실천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의 표현을 빌 리자면 ‘디자인은 동사’인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에게 책을 만든다는 것은 마감이 있는 단일한 행위가 아니라 지적 모험과 시각적 실험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놀이의 궁극이다. - 송수정, “사유와 상상의 확장을 위한 이미지의 질서” 중
정병규는 세 사람 모두의 사진책을 만들었다. 그에게 책은 하나의 세계이므로 책의 편집과 디자인은 실제 세계를 다루고 취사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가 책을 말할 때 사실 그는 정신과 물질의 세계를, 아니 그것을 넘어 세계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세 친구들은 함께 개개의 세계를 만드는 동반자이다. 나는 그가 그토록 훌륭한 사진가들을 벗으로 삼아 디자이너로서 깊이 행복했노라고 읊조리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언젠가는 그 친구들을 한데 다루는 글을 꼭 쓸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 최재균, “큰 나무들 아래서 놀다” 중
선생이 사진을 자르고 다시 배치할 때, 책을 구성하는 파라텍스트들과 이미지의 균형을 탐색할 때, 사진을 찍었던 당시에는 그저 가능성에 불과했던 숱한 의미가 마치 만화경처럼 탄생한다. 그는 사진책을 만들 때 자신이 시각적 질서를 설정하는 일종의 권력자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거물 사진가라고 해도 책이라는 낯선 시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길잡이와 조언이 필요한 것이다. 선생은 사진책 편집에 대해서 유난히 겸손을 강조하곤 했는데, 이는 어쩌면 권력을 지닌 이의 아량이었을지도 모른다. - 김현호,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중
그런 까닭에 그의 폴리오는 21세기를 향해 묻는다. 북디자인은 무엇인가? 시각은 어떻게 함께 태어나는 힘을 생성하는가? 지금, 우리 시각 문화로서의 북디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 북디자인의 모더니티는 어떤 모습인가? 현대성의 내부에는 진정 무엇이 존재해야 하는가? 무엇을 물어야만 하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의 출발점에는 여전히 정병규 홀로 서 있을 뿐이다. - 박상순, “시각과 언어의 폴리오, 정병규의 역사적 의미” 중
차례
감사의 말 - 정병규 9
추천사 - 이영준 11
사진책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36
한국의 굿 48
한일교류이천년 60
흐르는 섬 66
침무의 뿌리 76
광복40년 86
우리江山 94
한국인의 놀이와 제의 102
경주남산 12
경주남산 흑백판 132
누드 140
사진 고대학생운동사 1905~1985 150
밝은 방 158
한국의 탈 & 한국의 탈춤 170
환희와 우정: 미소 스포츠 사진전 184
나무 190
한국, 그 내면과 외면 198
생각의 바다 208
백남준 220
CHONG JAE-KYOO 28
신체 또는 성 238
한국의 부채 244
아시아의 하늘과 땅 250
KOREAN HERITAGE SERIES 266
모든 앙금 274
종이로 보는 생활풍경 284
짧은 연대기 292
한국의 굿 - 만신들 1978~1997 198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 306
젊은 건축가상 2008 316
민현식 326
주석 335
에세이
송수정: 사유와 상상의 확장을 위한 이미지의 질서 408
최재균: 큰 나무들 아래서 놀다 412
김현호: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421
박상순: 시각과 언어의 폴리오, 정병규의 역사적 의미 429
부록
강의록: 이미지 다루기의 19가지 법칙 456
사진책 만들기에 관하여 478
인터뷰: 사진, 책으로 보다 482
고유명사 484
편집 후기 493
정병규 약력 504
저자 소개
정병규는 1946년 대구 출생으로 출판인이자 북디자이너이다. 경북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대신문』 편집국장 (1974~1975)을 지냈으며 1975년 『월간 소설문예』 편집부장으로 출판계에 입문해서 이후 민음사 편집부장 (1976~1977)을 지냈다. 1977년에는 홍성사를 설립해서 ‘홍성정예작가신서’와 ‘홍성신서’ 등을 기획했으며 당시 홍성인쇄 대표와 홍성기획 이사도 맡았다.
정병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출판과 편집 일을 두루 경험하며 광고디자인 위주였던 한국 디자인 분야에서 북디자인의 생산력을 입증하며 직업인으로서의 북디자이너가 되었다. 제13회 동경 유네스코 편집자 트레이닝코스를 수료 (1979)한 후에는 북디자인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며 이를 독립적인 디자인 영역으로 개척해 나갔다. 프랑스 파리의 에꼴 에스띠엔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 (1982~1983)하고 돌아온 후, 1984년에 ‘정병규디자인’을 설립해서 지금까지 출판디자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병규는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민음사의 북디자인을 아트디렉팅했으며 이 외에도 많은 출판사의 책을 기획·편집•디자인했다. 2009년부터 『중앙일보』 아트디렉터 (2009~2012)로서 신문지면의 디자인 혁신을 이끌기도 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편집위원 (1984), 서울아시안게임 전문위원 (1986), 서울올림픽 전문위원 (1988), 파주출판도시 ‘동아시아 책의 길’ 집행위원장 (2005~2014),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회장 (2008~2009),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 (2008~2009), ‘중국의 아름다운 책’ 심사위원 (2010~2017),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조직위원장 (2019)을 역임했다.
1984년부터 2015년까지 명지전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경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고려대학교 등에서 강의했고,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편집자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출판디자인 강의를 했다.
제1회 독서대상 편집상 (1979), 한국출판학회상 (1983), 제1회 교보북디자인 대상 (1989), 한국아트디렉터즈클럽 금상/은상 (1996), 한국출판인회의 특별공로상 (2006), 한국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 (2010),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디자인부문 (2013)을 수상했다.
저서로 『정병규북디자인 1977~1996』(생각의바다, 1996), 『책의 바다로 간다 정병규북디자인 1996~2006』 (영월책박물관, 2006)이 있다. 주요 전시로 《정병규북디자인 20년전》 (1996, 지현갤러리 & 동덕갤러리, 서울), 《정병규 북디자인전 ‘책의 바다로 간다’》 (2006, 영월책박물관), 《테이프 그라피 한글》 (2014, 지지향갤러리, 파주), 《책의 바다로 간다》 (2017, 완주책박물관), 《러키 세븐》 (2017, 사각형갤러리, 서울) 등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현대 한국 북디자인전》 (1998, 다케오, 도쿄), 《한글전》 (2001, 오사카 DDD갤러리 & 도쿄 GGG갤러리), 《훈민정음·난중일기 展: 다시, 바라보다》 (2018, DDP, 서울) 등 주요 디자인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ㄱ의 순간》 (2020, 예술의전당, 서울) 등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2011년 ‘정병규 학교’를 개교했고, 2016년 자주출판 ‘정병규에디션’을 시작했다. 현재 정병규디자인 대표, 정병규학교 대표이며 훈민정음과 한글문자학에 관한 강연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 소개
정멜멜. 책 사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활동한다. 동료들과 함께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를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브랜드와 매체, 작가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사진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공간 자체보다는 공간을 이루고 있는 인물과 사물, 그 자리에 감돌고 있는 분위기나 여백을 포착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클라이언트 잡이 아닌 경우엔 대부분 자연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때로는 무의미한 것들을 담는다.
송수정. 에세이
출판부터 전시 기획까지 이미지와 관련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네덜란드 세계보도사진상 심사위원, 세네갈 다카 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으로 활동했고, 월간 『지오GEO』 편집장, 서울루나포토 공동 대표 등을 거쳐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으로 있다.
최재균. 에세이
포토넷+포노+걷는책 대표.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잡지 월간 『포토넷』의 기자·편집장·발행인으로 일했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했다. 현재 포토넷 + 포노 + 걷는책 브랜드로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현호. 에세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계원예술대학 H-CENTER 연구원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편집장을 거쳐 〈사진이론학교〉와 격월간 『말과활』의 기획위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보스토크』 매거진의 편집 동인이자 대표로 있다. 사진 이미지가 생성되어 사회적으로 유통되고 소멸되는 생애 주기의 패턴을 추적하고, 그 의미와 양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다. 여러 매체에 사진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거짓말 상회』(2018, 공저) 등이 있다.
박상순. 에세이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출판사 민음사에 아트 디렉터로 입사해 편집주간, 대표이사(편집인)를 지냈고 펭귄클래식 코리아 대표 편집인을 역임했다. 1991년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1993),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1996), 『러브 아다지오』(2004), 『슬픈 감자 200그램』(2017), 『밤이, 밤이, 밤이』(2018)를 출간했고 이상(李箱)의 시를 해석한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2019)를 출간했다. ‘현대시동인상’, ‘현대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재완. 해제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후, 정병규디자인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민음사출판그룹에서 북디자이너로 일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월의눈에서 사진책을 디자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