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ize : 210 x 280 x 8 mm
- Pages : 104 pages with 56 photographs included
- Binding : Sewn otabind
- Publication Date : 2017. 4. 16
- Published by Aprilsnow Press
- ISBN 978-89-969373-6-4 (06660)
책 소개
사진가 홍진훤과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이 만난 한 편의 사진소설.
2017년 지금, 2014년 4월 16일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나의 기억술로서의 ‘사진소설',
그 안에서 가로지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재구성되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공간들.
출판사 서평
2017년 지금, 2014년을 되돌아 보는 방법
어느덧 4월이면 떠올리게 되는 하나의 참사가 있다. 참사는 2014년 4월 이후, 한국 현대사에 추가해야 할 묵직한 챕터가 되어버렸다. 바로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이다. 세월호 3주기를 맞이하여 여러 행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관련 책 발간도 활발하다. <한겨레> 4월 12일자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발행되는 책 10종을 소개하기도 했다. 3주기 전날인 4월 15일, 광화문의 밤은 다시 오랜만에 빛났고, 노란 물결은 한동안 파도 탈 것이다.
그 와중에 바다 속 세월호는 3년이라는 무거운 시간을 버틴 후 뭍으로 나왔다.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사진 수 만큼 수면 위로 올라오는 세월호의 새로운 사진이 스펙타클한 취재 경쟁 속에서 생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지난한 시간 속에서 세월호의 바스라진 모습 또한 수없이 찍혀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진은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앞장설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선 사진은 편향적 시선이 세월호의 모습을 왜곡시키는데 이용당할 것이다. 사진은 어느 책 제목대로 “의미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사를 바라보는 사진의 모습은 무엇이어야 할까. 참사와 재난 앞에서 사진은 어떻게 서있어야 할까. 사진은 잘못된 현재를 교정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근미래를 보다 개선된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 과연 사진은 끔찍한 재난과 참사를 기억하는 회로로서 적합한 매체일까. 시간과 함께 희미해지는 참사의 윤곽을 사진은 또렷하게 복원시킬 수 있을까.
사월의눈은 세월호 참사를 앞에 두고 사진과 참사, 기록과 기억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사진책 출판사로서 이에 대한 발언은 어떻게 개진될 수 있을까, 방법론 보다 구체적으로 기억술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 것인가. 2014년 이후 해마다 찾아오는 4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홍진훤의 세월호 사진이었다. 논픽션과 픽션, 과거와 현재라는 미묘한 경계에 서 있는 홍진훤의 사진에 소설이라는 장르를 결합시켰다. 홍진훤의 사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와 김연수의 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그렇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는 다소 긴 이름의 사진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홍진훤의 사진, 부재(不在)라는 존재
“아이들이 보았을 법한, 아이들이 보았으면 했던, 아이들 같아 보이는 것을 찍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찾았던 2016년 제주도의 봄, 그곳에서 사진가 홍진훤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방문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 여정은 2017년 초까지 몇 차례의 제주도 방문을 통해 지속되었다. 홍진훤은 일정표에 나온 장소 뿐만 아니라,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는 풍경을 촬영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가 찾은 장소들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 대신 장소를 채우고 있었던 자들은 관광객들이었다. 그런데 홍진훤은 이들을 뷰파인더 바깥으로 밀어내고, 인간이 부재한 풍경 만을 덤덤하게 담아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심코 던진 질문의 무게가 나를 누른다. 그 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 질문을 알지 못했다. 없음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주차비를 받는 백발 노인에게 900원을 건네고 항구를 나와 2014년의 수학여행 일정표를 구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달동안 주말을 제주에서 보냈다. 아이들이 갔을 관광지를 방문했고 아이들이 봤을 풍경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묵었을 숙소에서 잠을 자고 아이들이 먹었을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 홍진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노트 중
사진연작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홍진훤이 담아낸 세월호 기록이다. 그곳엔 노랑 리본도, 슬퍼하는 유족들도, 투쟁하는 시민단체도 없다. 그의 사진에 기록된 세월호 참사란 부재(不在)로서 존재한다. 여러 재난과 참사 앞에서 사진은 연신 풍경을 할퀴지 않았던가. 증명하고, 제시하고, 선동해야만 하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진의 오래된 책무 앞에서 홍진훤의 사진은 반어법의 다큐멘터리를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연작은 부재로서의 세월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픽션이었다.
홍진훤의 사진은 과거를 반추하면서 현재를 지표로 삼는다. 지표로서의 현재에 아이들은 들어설 곳이 없다. 냉정하게 말해 그가 찾아간 장소는 일정표에 찍혀진 글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수학여행은 수포로 돌아간 과거이자, 그려질 필요가 없는 미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훤의 사진은 과거의 시간을 픽션으로서 복원시켰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의 반경이 다큐멘터리에서 픽션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이다. 그 안엔 계획된 미래, 무너진 미래로서의 과거와 동시에 현재로서의 시제가 공존한다. 책을 가로지르는 수평의 바다에는 그렇게 여러 시제의 시간들이 혼재되어 있다.
결국 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답을 알지만 모두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안산의 하늘을, 진도의 바다를, 제주의 바람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는 할까?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나는 쉬지않고 질문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란걸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이 시간과 공간에 누군가 마디를 정해둔 것은 참 다행스럽고 잔인한 일이다. 그 덕에 어쩔 수 없이 매년 4월을 맞이한다. 애초에 찾아야 할 것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질문처럼 없음을 찾아야 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홍진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노트 중
김연수의 소설, 기억이라는 생명줄
소설가 김연수가 2014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망각과 기억 그리고 그리움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직조해 나간다. 일본에 공연하러 간 한국 인디 여가수 희진 그리고 공연 당일 접하게 된 세월호 참사. 희진은 2014년 4월 16일, 수백명이 기약 없이 배와 함께 가라앉고 있을 때 일본 도쿄 모 숙소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튼 티비에서 재난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날 있었던 공연을 눈물로 끝내게 되었던 희진은 뒤풀이 자리에서 후쿠다란 이름의 일본인을 만나게 되고, 뒤늦게야 그가 자신의 공연을 성사시킨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와의 대화에서 그녀가 몰랐던 과거의 한 면이 베일을 벗는다. 낯선 타인의 생명줄이 되어 있었던 희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행위, 망각 속에서 싹트는 기억이라는 새싹. 타인과 나 사이, 타인과 타인 사이, 그 관계들 사이에 자리한 공백은 각 개인에겐 다른 의미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그리고 후쿠다와의 만남은 새로운 과거의 발견이자, 오래된 현재이기도 했다. 후쿠다와의 대화를 통해 희진은 10년 전 바로 그날, 그러니까 2004년 4월 16일, 전 연인이 몰래 남겨 놓은 두 문장에 대해 알게 된다. 일본의 모 카페를 함께 방문했던 그들은 음악을 들었고, 소설의 또다른 화자이기도 한 과거의 연인은 자신만의 내밀한 희망사항(프로포즈로도 읽힐 수 있는)을 방명록 한 구석에 남긴다. 그렇게 후쿠다와 희진 그리고 과거 그의 연인은 서로의 기억을 상호보완한다. 제 아무리 부서진 기억, 그러니까 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완될 수 있다면 망각은 한 순간 기억이 될 수 있고, 생명력도 얻을 수 있다. 희진은 후쿠다에게 음악으로서 생명을 상기시켜 줬으며, 그렇게 되살아난 후쿠다는, 희진은 몰랐고 옛 연인은 망각했던 시간의 한 조각을 되돌려 주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볼 꽃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걸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뿐. -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망각과 기억 사이로 직조된 우리 삶은 공동체로서 지속될 때 그나마 느리게 숨 쉴 수 있다. 기억은 공유되는 것이며, 공유를 통해 공동체는 과거의 참사를 함께 생각하고 나아가 복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유족들의 것이 아닌, 우리의 기억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수평과 수직의 교차, 사진소설
수평적인 사진의 축은 수직적인 소설의 배열과 교차를 이룬다. 그곳에서 참사를 기억하는 자들의 시간들이 씨줄과 날줄로 뒤엉킨다. 엮이는 시간에 따라 상이한 공간들이 접혔다 펼쳐진다.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기억하는 희진과 그의 옛 연인에게 홍진훤의 검푸른 제주 바다는 무엇으로 읽힐까. 4월의 눈이 남아 있는 제주도 풍경과 희진이 경험한 2014년 4월 16일 동경의 풍경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사진은 소설을 만남으로써 보다 적극적 화자로 둔갑할 수 있고, 소설은 사진을 만남으로써 오히려 소극적 화자로 물러설 수도 있다. 혹은 쪼개진 단편 소설에 사진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표면에 드러난 본래의 냉정함 그대로 소설을 견인할 수 있다. 소설과 사진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증폭시키는 몽타주이다. 사진과 소설의 몽타주는 복합적인 기억망을 배가시키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존 버거는 사진의 배열과 이야기를 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게 놓인 사진들은 살아 있는 맥락으로 복원된다. 물론 그것들이 유래된 원래의 시간적 맥락은 아니고 - 그것은 불가능하다 - 경험의 맥락이다.그리고 거기에서 ‘사진들의 모호성은 마침내 진실이 된다'. 경험의 맥락 아래서 반성에 의해 사진에 드러난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갖는다. 사진들이 드러내는 세계는 고정되고 추적 가능하게 된다. 사진에 담긴 정보에 감정이 스며든다. 모습은 한때 살았던 삶의 언어가 된다. - 존 버거, <말하기의 다른 방법> 중
사진소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묻는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살았던 삶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디자인에 관한 변이다. 프레임이 있는 사진과 과감하게 블리딩된 사진을 적절하게 섞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감정을 절제하기도 하고, 감정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사진소설에서 사진과 소설이 어느 하나의 부속물이 되어서는 곤란했다. 사진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소설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판형을 두개로 나누어 적용했다. 하지만 사진과 소설의 명확한 분리는 피하려고 했다. 사진과 소설은 서로의 이야기를 증폭시켜줄 수 있도록 고민했다. 사진에 소설이 스며들 수 있도록, 소설이 사진을 불러올 수 있도록 소설을 인쇄한 종이는 뒤비침이 있는 것으로 의도했다.
저자 소개
홍진훤
인간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버린 빗나간 풍경들을 응시하고 카메라로 수집하는 일을 주로 한다. <임시 풍경>(2013), <붉은, 초록>(2014), <마지막 밤(들)>(2015), <쓰기금지모드>(2016)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Peace, Voice, Nice(경남도립미술관)>(2015), <Minima Moralia(이르쿠츠크 국립 미술관)>(2015), <대구사진비엔날레(대구문화예술회관)>(2016),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16)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창신동에서 <지금여기>라는 공간을 운영했고 이런 저런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http://jinhwon.com/
김연수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시를 쓰다가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1994)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꾿빠이, 이상>(200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 <밤은 노래한다>(2008),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2012) 등의 장편소설과 <스무 살>(2000),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 <세계의 끝 여자친구>(2009),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 등의 소설집, 그리고 <청춘의 문장들>(2004), <지지 않는다는 말>(2012), <소설가의 일>(2014) 등의 에세이를 펴냈다.
책 소개
사진가 홍진훤과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이 만난 한 편의 사진소설.
2017년 지금, 2014년 4월 16일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나의 기억술로서의 ‘사진소설',
그 안에서 가로지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재구성되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공간들.
출판사 서평
2017년 지금, 2014년을 되돌아 보는 방법
어느덧 4월이면 떠올리게 되는 하나의 참사가 있다. 참사는 2014년 4월 이후, 한국 현대사에 추가해야 할 묵직한 챕터가 되어버렸다. 바로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이다. 세월호 3주기를 맞이하여 여러 행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관련 책 발간도 활발하다. <한겨레> 4월 12일자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발행되는 책 10종을 소개하기도 했다. 3주기 전날인 4월 15일, 광화문의 밤은 다시 오랜만에 빛났고, 노란 물결은 한동안 파도 탈 것이다.
그 와중에 바다 속 세월호는 3년이라는 무거운 시간을 버틴 후 뭍으로 나왔다.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사진 수 만큼 수면 위로 올라오는 세월호의 새로운 사진이 스펙타클한 취재 경쟁 속에서 생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지난한 시간 속에서 세월호의 바스라진 모습 또한 수없이 찍혀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진은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앞장설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선 사진은 편향적 시선이 세월호의 모습을 왜곡시키는데 이용당할 것이다. 사진은 어느 책 제목대로 “의미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사를 바라보는 사진의 모습은 무엇이어야 할까. 참사와 재난 앞에서 사진은 어떻게 서있어야 할까. 사진은 잘못된 현재를 교정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근미래를 보다 개선된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 과연 사진은 끔찍한 재난과 참사를 기억하는 회로로서 적합한 매체일까. 시간과 함께 희미해지는 참사의 윤곽을 사진은 또렷하게 복원시킬 수 있을까.
사월의눈은 세월호 참사를 앞에 두고 사진과 참사, 기록과 기억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사진책 출판사로서 이에 대한 발언은 어떻게 개진될 수 있을까, 방법론 보다 구체적으로 기억술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 것인가. 2014년 이후 해마다 찾아오는 4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홍진훤의 세월호 사진이었다. 논픽션과 픽션, 과거와 현재라는 미묘한 경계에 서 있는 홍진훤의 사진에 소설이라는 장르를 결합시켰다. 홍진훤의 사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와 김연수의 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그렇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는 다소 긴 이름의 사진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홍진훤의 사진, 부재(不在)라는 존재
“아이들이 보았을 법한, 아이들이 보았으면 했던, 아이들 같아 보이는 것을 찍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찾았던 2016년 제주도의 봄, 그곳에서 사진가 홍진훤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방문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 여정은 2017년 초까지 몇 차례의 제주도 방문을 통해 지속되었다. 홍진훤은 일정표에 나온 장소 뿐만 아니라,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는 풍경을 촬영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가 찾은 장소들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 대신 장소를 채우고 있었던 자들은 관광객들이었다. 그런데 홍진훤은 이들을 뷰파인더 바깥으로 밀어내고, 인간이 부재한 풍경 만을 덤덤하게 담아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심코 던진 질문의 무게가 나를 누른다. 그 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 질문을 알지 못했다. 없음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주차비를 받는 백발 노인에게 900원을 건네고 항구를 나와 2014년의 수학여행 일정표를 구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달동안 주말을 제주에서 보냈다. 아이들이 갔을 관광지를 방문했고 아이들이 봤을 풍경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묵었을 숙소에서 잠을 자고 아이들이 먹었을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 홍진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노트 중
사진연작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홍진훤이 담아낸 세월호 기록이다. 그곳엔 노랑 리본도, 슬퍼하는 유족들도, 투쟁하는 시민단체도 없다. 그의 사진에 기록된 세월호 참사란 부재(不在)로서 존재한다. 여러 재난과 참사 앞에서 사진은 연신 풍경을 할퀴지 않았던가. 증명하고, 제시하고, 선동해야만 하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진의 오래된 책무 앞에서 홍진훤의 사진은 반어법의 다큐멘터리를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연작은 부재로서의 세월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픽션이었다.
홍진훤의 사진은 과거를 반추하면서 현재를 지표로 삼는다. 지표로서의 현재에 아이들은 들어설 곳이 없다. 냉정하게 말해 그가 찾아간 장소는 일정표에 찍혀진 글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수학여행은 수포로 돌아간 과거이자, 그려질 필요가 없는 미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훤의 사진은 과거의 시간을 픽션으로서 복원시켰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의 반경이 다큐멘터리에서 픽션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이다. 그 안엔 계획된 미래, 무너진 미래로서의 과거와 동시에 현재로서의 시제가 공존한다. 책을 가로지르는 수평의 바다에는 그렇게 여러 시제의 시간들이 혼재되어 있다.
결국 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답을 알지만 모두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안산의 하늘을, 진도의 바다를, 제주의 바람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는 할까?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나는 쉬지않고 질문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란걸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이 시간과 공간에 누군가 마디를 정해둔 것은 참 다행스럽고 잔인한 일이다. 그 덕에 어쩔 수 없이 매년 4월을 맞이한다. 애초에 찾아야 할 것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질문처럼 없음을 찾아야 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홍진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노트 중
김연수의 소설, 기억이라는 생명줄
소설가 김연수가 2014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망각과 기억 그리고 그리움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직조해 나간다. 일본에 공연하러 간 한국 인디 여가수 희진 그리고 공연 당일 접하게 된 세월호 참사. 희진은 2014년 4월 16일, 수백명이 기약 없이 배와 함께 가라앉고 있을 때 일본 도쿄 모 숙소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튼 티비에서 재난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날 있었던 공연을 눈물로 끝내게 되었던 희진은 뒤풀이 자리에서 후쿠다란 이름의 일본인을 만나게 되고, 뒤늦게야 그가 자신의 공연을 성사시킨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와의 대화에서 그녀가 몰랐던 과거의 한 면이 베일을 벗는다. 낯선 타인의 생명줄이 되어 있었던 희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행위, 망각 속에서 싹트는 기억이라는 새싹. 타인과 나 사이, 타인과 타인 사이, 그 관계들 사이에 자리한 공백은 각 개인에겐 다른 의미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그리고 후쿠다와의 만남은 새로운 과거의 발견이자, 오래된 현재이기도 했다. 후쿠다와의 대화를 통해 희진은 10년 전 바로 그날, 그러니까 2004년 4월 16일, 전 연인이 몰래 남겨 놓은 두 문장에 대해 알게 된다. 일본의 모 카페를 함께 방문했던 그들은 음악을 들었고, 소설의 또다른 화자이기도 한 과거의 연인은 자신만의 내밀한 희망사항(프로포즈로도 읽힐 수 있는)을 방명록 한 구석에 남긴다. 그렇게 후쿠다와 희진 그리고 과거 그의 연인은 서로의 기억을 상호보완한다. 제 아무리 부서진 기억, 그러니까 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완될 수 있다면 망각은 한 순간 기억이 될 수 있고, 생명력도 얻을 수 있다. 희진은 후쿠다에게 음악으로서 생명을 상기시켜 줬으며, 그렇게 되살아난 후쿠다는, 희진은 몰랐고 옛 연인은 망각했던 시간의 한 조각을 되돌려 주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볼 꽃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걸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뿐. -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망각과 기억 사이로 직조된 우리 삶은 공동체로서 지속될 때 그나마 느리게 숨 쉴 수 있다. 기억은 공유되는 것이며, 공유를 통해 공동체는 과거의 참사를 함께 생각하고 나아가 복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유족들의 것이 아닌, 우리의 기억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수평과 수직의 교차, 사진소설
수평적인 사진의 축은 수직적인 소설의 배열과 교차를 이룬다. 그곳에서 참사를 기억하는 자들의 시간들이 씨줄과 날줄로 뒤엉킨다. 엮이는 시간에 따라 상이한 공간들이 접혔다 펼쳐진다.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기억하는 희진과 그의 옛 연인에게 홍진훤의 검푸른 제주 바다는 무엇으로 읽힐까. 4월의 눈이 남아 있는 제주도 풍경과 희진이 경험한 2014년 4월 16일 동경의 풍경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사진은 소설을 만남으로써 보다 적극적 화자로 둔갑할 수 있고, 소설은 사진을 만남으로써 오히려 소극적 화자로 물러설 수도 있다. 혹은 쪼개진 단편 소설에 사진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표면에 드러난 본래의 냉정함 그대로 소설을 견인할 수 있다. 소설과 사진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증폭시키는 몽타주이다. 사진과 소설의 몽타주는 복합적인 기억망을 배가시키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존 버거는 사진의 배열과 이야기를 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게 놓인 사진들은 살아 있는 맥락으로 복원된다. 물론 그것들이 유래된 원래의 시간적 맥락은 아니고 - 그것은 불가능하다 - 경험의 맥락이다.그리고 거기에서 ‘사진들의 모호성은 마침내 진실이 된다'. 경험의 맥락 아래서 반성에 의해 사진에 드러난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갖는다. 사진들이 드러내는 세계는 고정되고 추적 가능하게 된다. 사진에 담긴 정보에 감정이 스며든다. 모습은 한때 살았던 삶의 언어가 된다. - 존 버거, <말하기의 다른 방법> 중
사진소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묻는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살았던 삶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디자인에 관한 변이다. 프레임이 있는 사진과 과감하게 블리딩된 사진을 적절하게 섞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감정을 절제하기도 하고, 감정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사진소설에서 사진과 소설이 어느 하나의 부속물이 되어서는 곤란했다. 사진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소설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판형을 두개로 나누어 적용했다. 하지만 사진과 소설의 명확한 분리는 피하려고 했다. 사진과 소설은 서로의 이야기를 증폭시켜줄 수 있도록 고민했다. 사진에 소설이 스며들 수 있도록, 소설이 사진을 불러올 수 있도록 소설을 인쇄한 종이는 뒤비침이 있는 것으로 의도했다.
저자 소개
홍진훤
인간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버린 빗나간 풍경들을 응시하고 카메라로 수집하는 일을 주로 한다. <임시 풍경>(2013), <붉은, 초록>(2014), <마지막 밤(들)>(2015), <쓰기금지모드>(2016)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Peace, Voice, Nice(경남도립미술관)>(2015), <Minima Moralia(이르쿠츠크 국립 미술관)>(2015), <대구사진비엔날레(대구문화예술회관)>(2016),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16)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창신동에서 <지금여기>라는 공간을 운영했고 이런 저런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http://jinhwon.com/
김연수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시를 쓰다가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1994)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꾿빠이, 이상>(200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 <밤은 노래한다>(2008),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2012) 등의 장편소설과 <스무 살>(2000),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 <세계의 끝 여자친구>(2009),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 등의 소설집, 그리고 <청춘의 문장들>(2004), <지지 않는다는 말>(2012), <소설가의 일>(2014) 등의 에세이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