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의 이미지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사진과 사진을 닮은 그래픽, 그리고 그래픽을 닮은 사진까지 오늘날 시각적 풍경을 탐사하는 특집호입니다. 요즘 온라인과 SNS에서 사진과 그래픽의 구분이 모호한 이미지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사진과 그래픽이 서로를 닮아가며 뒤섞여 떠다니는 동시대의 시각현상과 관련된 다채로운 사진작업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을 분석한 비평가 여덟 명의 비평적 에세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시대 이미지의 생태계와 지형
ASMR은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령,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 청량한 음색의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 또는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아삭/바삭거리는 소리 등이 주로 익숙한 소리가 해당됩니다. 반대로 낯선 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긴장하거나 불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공포영화에서 음악과 음향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런데, ASMR의 음원은 대개 우리의 현실 속에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그 소리를 ASMR처럼 분명하고 또렷하게 듣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음향 장비를 동원해 특정한 소리를 증폭시킨 ASMR은 실제 소리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소리라면 여러 다양한 잡음이 섞여 있을 테고, 더 작게 들릴 테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ASMR에 익숙해지면, 실제 소리가 이전보다 실감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새우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요란하게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실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요즈음 광학 렌즈나 기기로 만들어낸 이미지 또한 ASMR처럼 ‘증강’되어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되어 사진인지 그래픽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 마구 떠다닙니다. 현실을 찍어 가공한 사진이든, 현실의 텍스처를 입힌 그래픽이든 현실보다 더 선명하고 더 리얼한 이미지는 사진과 그래픽의 경계를 지우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진과 사진을 닮은 그래픽, 또 그래픽을 닮은 사진이 위계와 구분 없이 뒤섞인 가운데 사진은 점점 더 그래픽 이미지처럼 보이고, 그래픽 이미지는 더 사진처럼 보이게 됩니다. 사진과 그래픽, 현실과 이미지는, 서로를 참조하며 섞여서 혼란스럽고도 이상하고, 또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광학적) 재현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시각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이러한 동시대의 시각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스토크 매거진은 다양한 사진작업과 비평문을 독자와 함께 바라보고 읽어보려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한 권의 잡지를 통해 지금-여기의 이미지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묻고 답하고자 합니다.
화보면에는 광학 렌즈나 광학 기기로 재현된 이미지이지만 다양한 방식을 통해 현실이 증강되어 오히려 그래픽에 가까운 이미지를 선보이는 사진작업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단순한 예지만, 책을 포커스 스태킹 기법으로 촬영하거나 가공한 사진은 목업 이미지보다 더 그래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이미 목업 이미지가 나오기 때문에 실물 책을 촬영할 때도 최대한 목업 이미지처럼 보이게 찍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시성을 증폭시켜, 사진인지 사진이 아닌지 모호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작업들을 모아 소개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사진의 영역과 의미, 그리고 작업자들의 변화된 감각 등을 함께 엿보고자 합니다.
비평 지면에는 서동진, 이영준, 이나라, 이진실, 유운성, 윤경희, 김정현, 권시우 등 여덟 명의 비평가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광학적 미디어와 재현, 이미지의 변화, 시각성의 확장' 등의 키워드를 탐구하는 비평적 에세이를 선보입니다. 사진, 영화, 미술, 문학, 기계비평까지 전문 영역이 다른 필자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미디어 - 이미지 - 시각성'에 관한 사유를 펼쳐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 이미지의 생태계와 지형을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VOSTOK〉 2021년 9-10월호 / VOL. 29
특집 | 비주얼 ASMR
001 Rainbow Variations _ Taisuke Koyama
016 Hyperreal Images Explore_ Justinas Vilutis
026 Front End _ Dávid Biró
038 Sketchbook / Cognition _ Felix Schöppner
050 Aircraft: The New Anatomy _ Maxime Guyon
065 이미지가 말했다, 차렷: 가동적 이미지라는 반(反)-이미지 _ 서동진
073 이미 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의 눈 _ 이진실
081 대표 이미지를 선별하시오 _ 권시우
089 눈먼 산책자 _ 유운성
098 Qualia _ Jason Lukas
110 Shallow Learning _ Aaron Hegert
132 This World and Others Like It_ Drew Nikonowicz
146 Crowded Fields _ Pelle Cass
161 재현 불가능성 2.0 _ 이나라
168 너의 눈, 너의 귀 모양으로 _ 김정현
175 19세기의 어린이와 환등기 - 프루스트와 파브르 _ 윤경희
185 21세기의 광학 미디어에서 보는 벤야민의 광학적 무의식 _ 이영준
194 Wildland _ Dylan James Nelson
204 Rendered _ Sally Jo
218 New Artificiality _ Catherine Leutenegger
222 Unphotographable Cases _ Youngho Jeong
246 Ghost Scans _ Carson Lynn
256 우리는 ‘사진’이란 말을 함께 써도 될까요? _ 박지수
지금-여기의 이미지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사진과 사진을 닮은 그래픽, 그리고 그래픽을 닮은 사진까지 오늘날 시각적 풍경을 탐사하는 특집호입니다. 요즘 온라인과 SNS에서 사진과 그래픽의 구분이 모호한 이미지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사진과 그래픽이 서로를 닮아가며 뒤섞여 떠다니는 동시대의 시각현상과 관련된 다채로운 사진작업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을 분석한 비평가 여덟 명의 비평적 에세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시대 이미지의 생태계와 지형
ASMR은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령,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 청량한 음색의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 또는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아삭/바삭거리는 소리 등이 주로 익숙한 소리가 해당됩니다. 반대로 낯선 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긴장하거나 불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공포영화에서 음악과 음향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런데, ASMR의 음원은 대개 우리의 현실 속에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그 소리를 ASMR처럼 분명하고 또렷하게 듣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음향 장비를 동원해 특정한 소리를 증폭시킨 ASMR은 실제 소리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소리라면 여러 다양한 잡음이 섞여 있을 테고, 더 작게 들릴 테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ASMR에 익숙해지면, 실제 소리가 이전보다 실감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새우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요란하게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실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요즈음 광학 렌즈나 기기로 만들어낸 이미지 또한 ASMR처럼 ‘증강’되어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되어 사진인지 그래픽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 마구 떠다닙니다. 현실을 찍어 가공한 사진이든, 현실의 텍스처를 입힌 그래픽이든 현실보다 더 선명하고 더 리얼한 이미지는 사진과 그래픽의 경계를 지우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진과 사진을 닮은 그래픽, 또 그래픽을 닮은 사진이 위계와 구분 없이 뒤섞인 가운데 사진은 점점 더 그래픽 이미지처럼 보이고, 그래픽 이미지는 더 사진처럼 보이게 됩니다. 사진과 그래픽, 현실과 이미지는, 서로를 참조하며 섞여서 혼란스럽고도 이상하고, 또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광학적) 재현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시각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이러한 동시대의 시각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스토크 매거진은 다양한 사진작업과 비평문을 독자와 함께 바라보고 읽어보려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한 권의 잡지를 통해 지금-여기의 이미지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묻고 답하고자 합니다.
화보면에는 광학 렌즈나 광학 기기로 재현된 이미지이지만 다양한 방식을 통해 현실이 증강되어 오히려 그래픽에 가까운 이미지를 선보이는 사진작업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단순한 예지만, 책을 포커스 스태킹 기법으로 촬영하거나 가공한 사진은 목업 이미지보다 더 그래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이미 목업 이미지가 나오기 때문에 실물 책을 촬영할 때도 최대한 목업 이미지처럼 보이게 찍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시성을 증폭시켜, 사진인지 사진이 아닌지 모호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작업들을 모아 소개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사진의 영역과 의미, 그리고 작업자들의 변화된 감각 등을 함께 엿보고자 합니다.
비평 지면에는 서동진, 이영준, 이나라, 이진실, 유운성, 윤경희, 김정현, 권시우 등 여덟 명의 비평가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광학적 미디어와 재현, 이미지의 변화, 시각성의 확장' 등의 키워드를 탐구하는 비평적 에세이를 선보입니다. 사진, 영화, 미술, 문학, 기계비평까지 전문 영역이 다른 필자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미디어 - 이미지 - 시각성'에 관한 사유를 펼쳐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 이미지의 생태계와 지형을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VOSTOK〉 2021년 9-10월호 / VOL. 29
특집 | 비주얼 ASMR
001 Rainbow Variations _ Taisuke Koyama
016 Hyperreal Images Explore_ Justinas Vilutis
026 Front End _ Dávid Biró
038 Sketchbook / Cognition _ Felix Schöppner
050 Aircraft: The New Anatomy _ Maxime Guyon
065 이미지가 말했다, 차렷: 가동적 이미지라는 반(反)-이미지 _ 서동진
073 이미 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의 눈 _ 이진실
081 대표 이미지를 선별하시오 _ 권시우
089 눈먼 산책자 _ 유운성
098 Qualia _ Jason Lukas
110 Shallow Learning _ Aaron Hegert
132 This World and Others Like It_ Drew Nikonowicz
146 Crowded Fields _ Pelle Cass
161 재현 불가능성 2.0 _ 이나라
168 너의 눈, 너의 귀 모양으로 _ 김정현
175 19세기의 어린이와 환등기 - 프루스트와 파브르 _ 윤경희
185 21세기의 광학 미디어에서 보는 벤야민의 광학적 무의식 _ 이영준
194 Wildland _ Dylan James Nelson
204 Rendered _ Sally Jo
218 New Artificiality _ Catherine Leutenegger
222 Unphotographable Cases _ Youngho Jeong
246 Ghost Scans _ Carson Lynn
256 우리는 ‘사진’이란 말을 함께 써도 될까요? _ 박지수